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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선 Mar 19. 2024

별빛 같은 나의 딸내미야

비록 지금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관계지만

딸아, 6년 전 아빠가 전력투구했던 일이 부도가 나듯 망해 버렸지.

엄마의 눈물 젖은 반대까지 무릅쓰고 고집부려 시작했던 일이었건만.

엄마가 휴일도 없이 벌어서 맡겨 두었던 돈까지 엄마 몰래 투입했던 일.

결국, 파산을 맞아 엄마와의 관계마저 소원해져 너를 힘들고 불편하게 만들었지.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내려앉았을 네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시리구나.     




엄마와 심하게 다투던 아빠를 보고 어느 날 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지.     


“아빠, 돈 못 벌어도 좋으니 제발 사고만 치지 마. 부탁이야, 응?”     


어쩌다가 가장이었던 이 아빠가 사고뭉치가 되어 자식과 아내에게

'사고만 안 치면 다행인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     




이 사건의 충격으로 넌 대학교 상담실에서 장기간 상담까지 받아야 했지.

딸아, 하지만 이 아빠는 널 믿는단다. 이것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걸.

넌 엄마 아빠의 공부하란 잔소리 없이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진학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이고,

12살 나이에 홀로 캐나다 유학을 떠나 홈스테이를 하면서 네 신발을 몰래 갖다 버리는

주인집 딸의 온갖 횡포와 핍박까지 잘 이겨냈던 소녀였잖니?




너 초등학교 3학년, 굉장히 무더웠던 하루, 아빠가 학교 쉬는 시간에

아이스크림 40개를 사들고 너의 교실을 찾았지.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아이들이 웅성거렸고

너도 놀란 토끼눈으로 아빠를 바라봤지.

아이스크림을 네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자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했고, 아빠가 운영하는 영어학원에 다니던

몇몇 아이들은 "원장님, 최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어.

그때 너무도 뿌듯해했던 의 우쭐하는 표정을 아빠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단다.

아빠가 꼭 다시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보람찬 일을 하여

네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저게, 우리 아빠야!" 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해볼 테니

어떤 일이 있어도 아빠 때문에 기죽지 말고 두 어깨 활짝 펴고 살아라.




세상을 온통 먼지로 덮어 버리는 최악의 황사도

결국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듯,

네 안의 강한 에너지가 이 모든 악조건의 기운들을

쓸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공한 딸의 포효


어느 날 라디오 사연소개 코너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청년이 무뚝뚝한 아버지와 평소 좀 서먹서먹했었는데, 어느 날 유학 와 있던 서울 전철 안에서 반대편으로 가고 있던 전철 속의 아버지를 발견했다고.

무슨 일인지 궁금하면서도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하지 못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 걸어 아버지 혹시 서울 가셨느냐고 물어보았다는...

이 일이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두고두고 후회된다는 이야기였어. 이 아빠는 너와의 관계가 이 사연 속의 부자처럼 어렵고 서먹서먹한 관계는 되지 않길 바라.     




일본의 어느 유명 작가가 말했다지.

“가족이란 보는 사람만 없다면 몰래 버리고 싶은 존재이다.”라고.

근데 50년 넘게 살아 보니 가족만 한 힘은 없더구나.

이 아빠가 파산선고를 받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야 했을 때도,

불면의 밤들을 보내다가 결국 얼굴 한쪽이 돌아가는 병까지 얻었을 때도

아빠에게 힘이 되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던 건 네 고모와 할머니뿐이었단다.     





딸아, 나의 외동딸아! 외동의 ‘외’ 자가 외로운 외가 될까 봐 이 아빠는 가끔 겁이 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자매일 텐데 그걸 해 주지 못해서.

하지만, 넌 너 혼자서도 널 지켜낼 수 있는 강인한 존재라고 믿기에

더 이상 걱정은 하지 않을게.

그리고, 이 아빠도 더 이상 가족의 짐이 아닌 힘이 될 테니 너도 힘내기 바라.

구만리 같은 너의 인생이 숙제가 아닌 축제가 되길 진심으로 빌며.

사랑한다, 딸아.     

#에세이 #라이프스타일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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