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에서 대학생일 때, 저는 교수님 중 한 분인 최박사님과 저의 잡다한 관심사, 약간의 철학적인 문제들, 그리고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으로부터 제 인생관을 완전히 바꾼 한 마디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믿는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의 몸과 마음은 한동안 얼어붙었습니다. 솔직히, "인도 철학사"라는 강의를 듣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저는 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붓다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깨달음"의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지 약 일주일 만에 불교철학을 전공하는 다른 교수님에게 '부처'와 '깨달음'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 교수님은 제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동료 중 한 명인 요가 선생님을 소개해주었고 불교 사찰에서 열리는 여름 요가 수련회에 참석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과정 중에 요가 선생님은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아니면 그 누가 당신의 삶을 만족시켜 주겠는가?"라고 물으셨는데, 저는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은 제가 더 많은 책을 읽고 삶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인도철학사(1987), 불교철학사(1988), 불교철학의 주제들(1990), 동양철학 세미나(1990) 등 수강할 수 있는 모든 불교 관련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또한 분석철학사(1990)를 공부하면서 최 교수님과 함께 선의 비교연구서이자 주목할 만한 현대철학자의 사상서인 "선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습니다.
티베트스님과 함께 명상 중
한편 초등학생 때 저는 천주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을 예배를 드리러 가실 때 저도 가끔 데려가셨는데, 작은 마을에 살던 저는 교회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방학 동안 함께 참여했었던 ‘여름성경학교’가 이 천주 교회와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한 조각 드릴테니 입에 넣고 음미하여 주세요."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어린 마음에 곧이곧대로 믿은 나머지, 고기도 잘 먹지 못했던 저는 사람의 살을 먹는다는 사실이 몹시 두려워 여름성경학교가 열리고 있던 교회를 탈출하고 말았거든요. 그리고, 그 후 철학을 전공하기 전까지 종교인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행위에 실망한 나머지 종교인들에게 사뭇 비판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 재학 중에는 삶에 대한 견해가 달랐던 교수이자 철학자 일곱 분 사이에서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느 분이 제 삶과 인간들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일까? 누가 나를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가장 잘 인도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들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제가 각기 다른 성향의 그분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다행이었던 것인지 알게 되었고, 그들로 인해 제가 삶에 대해 더 포괄적인 지식과 더 넓은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제가 또 다른 대학에 들어가서 인생관이 다른 새로운 교수들을 더 만나는 것은 제겐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거기에서 직면할 수 있는 혼란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과정 없이는 의식을 확장하고 서로의 강점을 존중해야 하는, 삶에 대한 지식의 각기 다른 길들을 통합하거나 종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과정은 정확히 ‘교육’이 뜻하는 바 그대로이고 , 말 그대로 'University'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바 그대로입니다.
솔직히 저는 티베트 불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 저는 "달라이 라마의 삶"을 읽고 린포체의 책을 텔레비전 특집에서 소개받은 정도입니다. 저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을 배출한 티베트 불교의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 궁금했습니다. 또한 선행연구를 통해 한국에서도 티베트불교가 불교사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 여겨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요. 앞으로 티베트 불교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자 하며, 단순히 몇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며 티베트불교의 체험적 지식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 티베트불교를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고 불교의 다른 전통과 통합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아침과 저녁에 규칙적으로 명상하는 것에 익숙해서 "앉아서 집중하는 명상(Sitting Meditation)"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란 그저 '헛된 것', 즉 허무한 Nothing이 아니라 '창조 가능한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열띤 토론 중인 티베트 스님들
"불교 탐구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잊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로 큰 존재 또는 실재 자체의 참다운 활동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고, 우리의 삶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수행의 목적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선으로의 초대], 스즈키 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