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까 들어보니 면역 글로불린 맞는 것 같던데.. 얼마 전 조혈모세포 이식 했나요?"
주사실에서 나란히 옆 침대에 누워 면역글로불린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들었더니 옆의 어르신이 말을 걸어오신다.
면역 글로불린. 면역을 아주 빠르게 올려주는 효과 적인 약. 이식 환자에게는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필수 적인 약. 그래서 엄청 비싸다. 몸무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성인 남성의 경우 한번 맞는데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지만 이 역시 산정특례제도 덕분에 5프로 만을 지불하고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그 효과도 엄청나다. 종이 인간처럼 살랑 거리는 봄바람에도 주체하지 못하던 몸이 한 번씩 맞을 때마다 단전에서 힘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네 4월에 이식했어요"
"내가 한 달 빨리 했네요 그럼. 근데 머리카락이 그대로네요? 젊어서 그런가? 머리 안 빠지던가요
?"
이 당시 가발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반인 코스프레를 잘하고 다녔다.
"자연스러운가 봐요! 이거 가발입니다!! 하하"
이식 후 식생활이나 접종 스케줄등 궁금한 게 많은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지가 한 명 더 생겼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같은 다발 골수종에 담당 교수님도 같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어르신의 눈이 순간 반짝거리시면서 질 물을 쏟아 내기 시작하셨다.
" 이식 전에 교수님이 묻더라고요. 유지요법을 임상 중인 매우 좋은 약이 있는데 그걸로 하겠냐고.. 재발을 30 퍼센트 정도까지 낮춘다고. "
'!'
나는 금시초문이다. 그런 좋은 약이 있단 말인가!
유지요법.
워낙 재발률이 높다 보니 표적 항암제 성분인 면역 억제제를 이식 후 3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앞으로 쭈욱 투약해야 한다. 교수님들마다 방식이 다르지만 재발할 때까지 유지요법 약을 처방하시는 교수님도 있으시다.
나의 눈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번 외래에서 그 임상을 이제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임상 모집이 다 끝났다고 더 이상 못 들어간다 하더라고.."
많이 아쉬워하는 어르신의 모습뒤로 나의 가슴은 쿵쾅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저 임상에 들어가고 싶다!
나이별로 임상 실험자 모집이 있을 거니 젊은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할 테니 나는 저 임상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나이 대 실험자 모집은 아직 하고 있을 거야!
내심 기대하며 나의 진료차례를 기다렸다.
면역 글로불린은 맞는데 최대 3시간 까지 걸리기 때문에 링거를 단채로 외래 진료실로 들어갔다.
" 별 이상은 없어 보이네요, 2주 후에 봅시다"
"?!?!"
'그 뒤에 다른 말은 없으신가요? 교수님? 임상약은요? '
속에서는 열천 번도 더 질문을 하지만,
"네.. 감사합니다.."
소심한 나는 조용히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다.
사실 진료실은 들어갔다 빨리 나오는 게 가장 좋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 채혈 결과가 좋지 않던지 하고 있는 치료가 불응이라 대안을 찾는다던지 하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노룩 패스 하시는 게 오히려 달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참 아쉽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임상약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관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데, 초조하고 욕심이 들끓는 건 막을 수가 없다.
"후우~~~~~~~~~~~~~~~~~~~"
쉼 호흡을 길게 해 본다.
'순리대로 되겠지'
항암을 하면서 나를 견디게 한 한마디.
이제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안달복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전전긍긍한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만 좀 먹어가니까.
'순리대로 될 거야'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욕망.
내 것이 아닌 걸 탐낼 때 생기는 어리석은 감정.
내 것이면 길을 틀어막고 있어도 돌고 돌아 나를 만나게 될 것이고
내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길 목을 지키고 서 있어도 엇갈리게 될 것이다.
낙천.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운다.
'욕망을 비우고 낙천하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