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by 나옹

'마약성 진통제가 강력하긴 강력했구나!'


퇴원하고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참으로 아프다.

무균실에서 주렁주렁 달고 있던 수액과 진통제등 약발이 없으니 고통이 생 날것으로 느껴지는데

이것도 살아있다는 증거이지 싶어 마음으론 기껍게 받아 드려 진다. 중간중간 쌍시옷 욕이 올라오긴 하지만.


"자기 손톱이 시커멓게 변했네!? "


변한 손톱색을 보며 놀란 남편에게


"발톱도 새까매졌어!"


웃으며 대답해 본다.

이식 후 손톱 발톱이 다 빠지는 환자들도 있다 하는데

무균실에서 만난 한 살 많던 언니가 손발톱이 너덜거려 고생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나 또한 엄지발톱은 두 달쯤 후 절반이 날아갔다. 백혈구 수치가 0으로 떨어졌을 때 몸이 받은 타격이 단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리라.


하루 이틀 시간이 감에 따라 그래도 조금씩 고통이 완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제는 식욕이 문제다.


"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


몸을 추스르려면 뭐라도 잘 먹어야 하는데 먹을 수 있는 게 극도로 제한적이다.

자가조혈모 세포 이식(골수 이식) 환자는 면역을 한번 다 갈아엎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생아와 다를 봐가 없다.

그동안 살아가며 아파가며 키워온 면역이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다. 시일이 좀 지나면 신생아가 맞아야 하는 기본 접종들도 다시 다 맞아야 한다. 지금은 갓 태어난 면역이 없는 신생아 그 자체.

그래서 먹는 것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

날것, 생것 은 당연히 안되고 멸균된 음식들만 가능하다.

과일도 제한적으로 가능한데 껍질채 먹는 과일은 안되고 껍질을 벗겨 먹는 것도 아주 두껍게 깎아서 먹을 수 있다. 안된다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는 게 사람의 특성인지라 음식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커져 간다.

무균실에서의 18일 동안 살이 8킬로 빠졌을 만큼 그동안 못 먹었던 것도 음식에 대한 갈망을 키우는데 한몫하겠지.

그래도 먹고 싶은 게 하나, 둘 생기는 걸 보니 이제 살만한가 보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어젯밤에 달이 뜬 아름다운 도시야경을 감상하는 꿈을 꿨어요! "


이식 후 나의 수발을 위해 잠시 함께 지내시는 시어머니께 간밤에 꾼 아름다운 꿈이야기를 전했다. 퇴원 후 처음 이주동안은 앉아있기도 힘든 날의 연속이라 부축부터 식사까지 신생아처럼 돌봄이 필요하다. 이 모든 걸 군소리 없이 따스하게 돌봐주신 우리 시어머니.


"잘은 모르겠지만 내일 외래에서 좋은 소리 들으려는 거 아닐까? 좋은 꿈인 것 같은데?"


이식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 순리대로 되겠지요"


나도 차분히 미소 지어본다.

항암치료를 하며 터득한 진리 하나.

욕심낸다고 안될 일이 성사되지도 않고

될 일이 안되지도 않는다.

나는 최선을 다해 생존하려 노력했으니

결과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드디어 이식 후 첫 외래.

이식결과를 듣는 날이다.

조용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숨죽여 교수님을 응시하는데,


"M단백이 0이네요! 미세 잔존암 검사도 음성입니다! 완전 관해가 되었네요! 이러면 예후도 굉장히 좋습니다"


꿈에도 그린 완전관해 판정을 교수님께 들었다!


할렐루야!!

머릿속에서 할렐루야 음악이 울려 퍼진다.

나는 신을 믿진 않는다.

무신론자이지만 가장 친숙한 종교적 광명의 음악이 내 머릿속에 이 순간 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 니다!"


뺨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은 감격이라는 단어로는 표현 불가능하다.

횡재운이 나는 없다고 질질 짜기만 했었는데

내 인생의 로또가 당첨되었다!

새로운 생명이라는 로또가!

여전히 높은 재발률이 발목을 잡지만

지금 만큼은 다시 태어난 이 기쁨을

내일의 태양을 마주한 이 기분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그건 그렇고 무균실에서 유독 출혈이 있으면서 힘들어했네요? 다발 골수종 환자들은 좀 무난하게 이식 과정이 지나가는데..."


젊은데 뭘 그래 힘들어했냐며 조금은 타박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 이 세상 고통이 아니던데요!"


라며 진심이 한가득한 목소리로 내 질러본다.


"하하하하하"


교수님이 크게 웃으시는 건 처음 봤다.

밖의 외래 환자들이 어리둥절 진료실 안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는데 정숙해야만 하는 진료실에서 자꾸 올라가는 내 얼굴 근육은 어쩔 수가 없이 방실거린다.


숨이 탁 트인다.

마치 갓난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우렁차게 울면서 호흡을 하듯이.

나는 이 순간 다시 태어났다!

뜨겁게 뛰는 내 심장 소리가 들린다.

다만 내 면역도 다시 신생아가 되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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