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짭짤한? 라면!

by 나옹


“M 단백 수치가 딱 0으로 떨어지진 않네~”


마지막 항암 여섯 번째 사이클 피검사 결과를 보시며 교수님이 하시는 말.


'이제 이식밖에 남지 않았는데 암세포가 다 사라지진 않았구나…. '


항암 6사이클을 하면서 M단백 수치가 0.3 정도까지 떨어져서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전엔 관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암세포가 다 사라지지 않았다.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이후에 완전히 관해가 일어나기도 하나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렇지! 이식 이후에 M 단백이 0이 나오고 관해 될 수 있지. 이제 이식 일정 잡으면 되겠네”


데이터상 가능하다는 희망을 교수님께 전해 들으면서 올라오는 또 다른 궁금증 하나.


“그런데 입원하겠다고 해서 이 시국에 지금 입원이 가능한가요?”


뉴스만 틀면 의료파업 이야기만 나오던 시기. 나의 이식 일정은 그대로 소화할 수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이제는 모든 걸 순리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어서일까? 그렇게 초조하진 않다.


“사실 아산병원은 지금 이식 일정 다 취소하고 있다 하더라고”


교수님이 무심코 뱉으시는 말씀.

심장 쿵.

초조하지 않다는 말 취소.


“근데 이병은 바로 이식 안 하면 재발하고 악화하는 병이라 이식해야지! 나가서 간호사와 일정상의 해요”


자신이 속한 틀이 뿌리째 흔들리던 시기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몇몇 의료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카페 개업 축하해!"


이식 직전날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카페 개업날이었다. 벚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계절에 새로운 도전을 하며 빛나는 지인의 모습에 나도 언젠가는 다시 밝게 빛나리라 소망을 품어본다.


"이게 뭐야? 케이크박스 위에 편지가 있네?"


축하화분에 대한 답례로 지인에게 받은 케이크 상자 위에 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다. 몇십 년 만에 받아 보는 손 편지 인지. 이식 후 건강하게 보자며 기원하는 마음을 한 자 한 자 눌러 담은 진심에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넘치도록 고마운 마음들을 받는다. 항암을 하면서 받은 고마운 마음과 국가적 지원들. 그 언젠가 나도 이 사회에 돼 갚을 수 있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라본다.








"나 잘 다녀올게!! 사랑해"


무균실 입구 앞에서 남편에게 씩씩하고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간호사와 함께 외부와 단절된 무균실로 들어갔다. 이중으로 닫힌 문사이로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남편이 나를 배웅한다.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연인 이자 존경하는 나의 남편 생각에 눈물이 핑 돌려하는데,


"몇 살이세요? "


5명의 환자 중 나와 동년배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반기듯 인사를 건넨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도 이식 환자가 있다! 동질감에서 비롯된 반가운 감정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겠지.

한 살 많은 재발 백혈병 환자. 우리는 무균실에서 급속히 친해졌다. 같은 시간대를 공유했다는 것과 같은 시기에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전우애를 쌓게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 약 3주에서 한 달 동안 골수 이식이라는 산을 함께 넘어야 하는 사이니까.


무균실에는 우리 말고 3분의 어르신들이 있었다. 연세를 여쭤보니 다들 나의 친정어머니 보다 연로하시다.


"이렇게 아프고 보니 딱 10년만 더 살다 갔으면 좋겠어!"


건너편 어르신께서 아쉬워하며 하시는 말씀에,


'나는 어르신 나이까지만이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죽음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겠는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120살까지 살 거라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 게.

80까지 건강하게 살 거라고 말했다가 내 말을 듣는 병실 내 대부분의 다발 골수종 환자분들이 80을 넘겼거나 그 인근이라는 걸 인지하고 난 후 들으시는 분들에게도 희망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120살까지 살 거라고 요즘은 습관처럼 어딜 가나 말하고 다닌다.







" 저기... 제가 너무 피를 많이 토했는데...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항암제를 치사량 수준으로 고용량 투여해 백혈구 수치를 0으로 떨어 트리고 몇 달 전 채집하였던 나의 조혈모를 투여하는 과정. 백혈구가 0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건 감염에 취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세균에도 감염되어 죽을 수 있는 치명적인 과정.

나의 백혈구는 빛의 속도로 0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멜파란이란 이 치사량의 항암제는 점막에 치명적이라 항암제를 투여하는 내내 입안 점막이 상할까 봐 얼음을 물고 있을 정도였다.

항암을 맞고 2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폭풍 구토와 설사를 하기 시작했고 새벽즈음부터는 점막이 다 상해 많은 양의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교수님께 나의 상황을 바로 전하기 위해 열심히 피 묻은 변기 사진을 간호사들이 찍기 시작했고

나의 정신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이잉


진동으로 울려대는 핸드폰.


'제기랄'


하필 나의 폰은 플립폰이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통화가 안되면 남편이 걱정할 텐데...'


하지만 목소리를 낼 힘도 없다. 너무 아주 많이 아프다.

나의 몸에서 모든 면역세포가 죽어가고 있음이 아주 절실히 느껴진다.

무균실에서의 한 달을 지루해서 어찌 지내냐며 내심 걱정 했었는데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침상에 누워 있음에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어지러움은 한계에 치닫고 있었고 일주일째 먹은 게 이온음료와 보리차가 전부이지만 한 시간에 한 번씩 토하기 바빴다. 이따금씩 피도 토하고.


뚜뚜뚜뚜뚜


마약성 진통제가 나에게 달린다. 마약성 진통제이기 때문에 정량씩 일정한 간격으로 투여시키기 위해 기계에 부착시켜 조금씩 나에게 흘려보낸다. 가장 강한 진통제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아픔이 한도를 초과한듯하다. 추가적으로 신경 안정제가 반복적으로 투여되고 온몸이 땀에 절어 고통에 떨면서도 기절하듯 잠이 든다. 2-3시간 후 이내 깨어나긴 하지만 정말 사람을 푹 재우니 신경안정제를 계속 달라고 마약 중독자처럼 울부짖었다.

중독자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점점 고통에 정신이 잠식되어 갈 즈음,


"드디어 0이네요!"


새벽부터 채혈해 간 나의 피검사 결과를 내 차트에 기록하며 간호사가 넌지시 알려준다.

이제야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을 수 있다는 기쁨에 벅차올라


"정말요?"


라고 벌떡 일어나 큰소리를 냈더니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초 주검의 상태에서 과도하게 소리 질러서 그랬으리라.







" 이식하니까 조금 낫죠?"


나보다 이 모든 과정이 이틀 빠른 한 살 많은 언니가 작은 위로를 건넨다.

확실히 백혈구가 0으로 떨어지던 순간들 보다는 아주 조금 낫긴 나았다. 하지만 또 다른 복병하나.

먹은 게 없는데도 감염 예방으로 맞는 수많은 항생제 부작용인 폭풍설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이틀은 한 시간에 한두 번씩. 그다음은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여전히 2주가 넘게 먹은 건 이온음료와 보리차가 다다. 그래서 초록색 담즙이 설사로 나오기 시작했다.

설사를 미친 듯이 하는 중에도 하루하루 지나감에 액체 말고 다른 음식을 먹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인간의 생존 본능인 걸까?!


"라면이요!"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라는 영양사의 말에 라면이 떠올랐다. 무균실은 깡패라는 말이 있다. 한 끼 식사 값이 만원으로 비교적 고가가 책정되는 만큼 먹고 싶은 건 거의 다 만들어 주신다. 먹을 수 있는 환자가 거의 없는 게 문제지만.

다른 무균실 환자들에게 한 젓가락씩 나눠주고 호기롭게 한 젓가락질 하는데 목구멍이 미친 듯이 따갑다. 딱 두 가닥이었지만 라면이 넘어간다. 수십 번의 구토와 고용량 항암제로 상할 대로 상한 식도와 위장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날의 라면맛은 잊을 수가 없다.


조금도 짜지가 않았다!

점막이 상하다 못해 나의 혓바닥의 껍질이 모두 벗겨졌기 때문에 아무 맛도 느껴지는 게 없다!

무맛이다!






"젊으니까 다르긴 다르네요!"


아침 회진에서 이틀 만에 나의 백혈구 (정확히는 호중구) 수치가 1000을 넘었다고 교수님께서 기뻐하신다.

호중구 수치 1000이 넘으면 무균실에서 나갈 수가 있다. 1500부터가 정상 수치이니 치명적 감염의 위험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틀 만에 백혈구를 1000 이상 만들어 내기 위해서 12시간마다 맞은 백혈구 촉진제에 온뼈 마디마디가 저려온다.


"내일 바로 퇴원합시다. 일주일 후 외래에서 뵐게요"


한 달을 예정했던 나의 무균실 생활은 18일 만에 끝이 났다.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던 18일 전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근육이 다 빠져 걷기도 힘들고 중심을 잡고 앉아있기도 벅찬 종이인간이 되어버린 채로 무균실을 퇴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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