몫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될는지도

좋아하는 시집

by 레몬소르베

다은 언니와 점을 보러 갔다. 무당은 방울을 흔들고 부채를 만지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윽고 나를 보고 안쓰럽다고 했다. 너는 인간에 대한 애가 많다고, 나 없이도 세상은 돌아간다고 했다. 늘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지만, 나 없이 잘 돌아갈 세상에 섭섭해진다.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인데, 내가 사는 세상에 내가 없이도 잘 돌아 갈거라니. 알면서도 기대를 놓기 힘들다. 자꾸 그래서 존재의 의미를 새기기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놓고 싶다. 이를테면 터무니 없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튜브라던가, 가끔 광고 문의나 들어오는 네이버 블로그처럼.

키라처럼 열두살에 부자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열두살에 살아지는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때되면 밥주고, 씻겨주고 하는 부모님 아래서 평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숨만 쉬면 그게 사는 것이라고. 여섯 살 계곡에서 물에 빠졌을 때, 나는 꽤 오랜 시간 의식을 잃었는데 그 때 눈을 뜨니 어른들은 나에게 살았다! 라고 외쳤다. 나는 그게 살아있는 건줄 알았다. 아빠가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빠의 편지를 읽으며,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살아가는 것인줄 알았는데 무엇이 아빠를 힘들게 만들었는가 생각했다. 아빠는 세상에 지쳤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다. 나를 마지막으로 안아줬던 200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빠 아직 죽지 않았다고 연신 되뇌었다. 해병대 지갑을 꺼내 오천원을 쥐어줬다. 나는 좋아하는 다이어리를 사서 방 안에서 한참을 만지작 거렸다. 다시 거실에 나왔을 때 아빠는 없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시 2022년 여름, 무당은 너네 엄마 안 해본거 없는 사람이다, 열심히 살았다. 이것 저것 다 해봤을 거다. 엄마 꿈자리는 늘 맞지 않더냐고, 엄마는 절에 빌고 닦고 해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인간은 다 죄를 짓고 살아가는데, 죄라고 해서 큰 것이 아니라 내가 뱉은 말에 남이 상처받으면 그것도 죄라고, 엄마를 데리고 자주 절에 드나들라 했다. 나는 그 말이 이제 그만 엄마를 용서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열두살에 어른이 되어버린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너네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 같았다. 무당은 나의 사주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상담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 소리 들어야 한다고, 이런 사주를 두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이제는 어른이니 집안 핑계 대지말고 하고 싶은 것 해보라 그랬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입시 때 국문과를 포기하고 사회복지를 선택했던 건 전적으로 집안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개개인으로써 독립해야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각자의 몫을 빨리 해내야했다.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반으로 나눠도 되었을 일을 우리 엄마는 혼자 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어서 내 인생을 사는 것, 그래서 엄마는 이제부터라도 엄마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부디 엄마는 나에 대한 당신의 몫을 내가 성인이 된 2014년에 끝냈다고 생각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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