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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버드 Jun 23. 2022

고통은 나의 힘

살기 위해 쓰는 글

스스로 병원과 상담소를 찾아간 이유는 내 분노가 다른 사람을 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아들, 그 아이에게만큼은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서, 내가 싫어서, 나를 믿지 못해서 찾아갔다. 지금도 치료 중이고 언제쯤 치료가 끝날지 모르겠지만 죽을힘을 다해 붙잡고 있다. 고통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희망이 있어서 아직 나는 살아 있다.


2018년 겨울, 살림 의료 협동조합에서 10주 동안 '여성주의 학교'를 수강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나서는 말할 수 있었다. 속이 후련했고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불과 3년 사이에 나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됐다. 가부장제, 돌봄 노동, 가사 노동, 꾸밈 노동, 성역할 고정관념, 젠더 이분법, 로맨스 각본 같은 새로운 말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살래?" 분노는 들끓기 시작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며느리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어머니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동안 남편과 많이 싸웠다. 나는 '내가 왜?"라고 했고 남편은 "너는 왜?"라고 했다. 질문은 했지만 서로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싸움에는 힘이 필요하다. 싸우는 것은 건강하다는 뜻이다. 관계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다. 나는  번도 제대로 화를 내본 적도 없고, 건강하게 싸워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치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뒤이어 절망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몸을 움직일  없었다. 침대에  몸이 찐득찐득한 엿가락처럼 녹아 있는  같았다.  밥도 먹을  없었고 씻을  없었다. 웃을 수도,  수도 없었다. 진실은 감당해  힘이 없을 때는 달갑지 않다. 상담 선생님은 고통을 느낀다면 마음의 힘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불쑥 올라오는 , 어쩔  없다는 체념, 잘못된 인생이라는 수치심,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혐오, 이런 고통을 느끼는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3년은 내가 나를 망치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지켜보는 나날이었다.


내 안에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분노의 방이 있고 철문으로 굳게 닫아 놓았다. 모두를 파멸시킬 분노가 가득 찬 방이다. 3년 전 여성주의가 그 방문을 열었고 그 문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보았다. 무서운 경험이었다. 두려워서 피했던 감정을 직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상담은 그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화재의 진원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 나는 불길 속에서 길을 잃었다. 또다시 형체가 없이 녹아내리려고 한다. 어디쯤에서 불길이 시작됐는지 알 것 같은 데 갈 수가 없다. 알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 나를 휘젓는 기억과 그 기억을 바라보는 내 마음과 이어서 찾아오는 고통을 더 이상은 잠재울 수가 없다. 써야겠다. 쓰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고통을 이용해서 살아야겠다.



제목 이미지 출처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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