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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버드 Jun 24. 2022

존재를 구걸하는 삶

버림받을 만한 존재로 산다는 것

나는 타인의 장점을 잘 알아본다. 배우고 싶고 따라 하고 싶다. 칭찬하고 찬사를 보내고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나에겐 없는 것, 마땅히 가져야 했으나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다. 사랑받은 사람의 태도. 그의 옆에 있으면 나도 사랑받아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빈약한 자존감이 들통나지 않고 그럭저럭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태도를 갖고 싶고 채우고 싶었다. 그래야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인의 장점을 알아보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나의 생존 방식이다. 어린 시절 지속된 트라우마에서 터득한 삶의 기술이다. 나를 낮추고 그를 높여야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아파도 그를 기분 좋게 해 줘야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삶을 파괴한다. 어린 시절에 자신을 보호했던 방법을 어른이 되어도 똑같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력한 어린아이가 살기 위해 찾은 방법은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학대하는 어른을 미워하면 아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학대하는 어른을 좋아하는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이는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른이 괜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뭔가 잘못돼서 그런 거야.' 나는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나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들 사랑받았고 나는 사랑을 못 받았으니 내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자고 늘 나를 다그쳤고 어딘가엔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이유는 버림받지 않기 위함이고 그것이 삶의 목표였으니 나는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나에게 타인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나를 아프게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고치기만 한다면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플 때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번엔 또 뭘 잘못한 거야?" 모든 일이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 해결되지 못했다면 그것 역시 내 잘못이라는 생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통의 이유가 내 안에는 차고 넘쳤다.


타인은 언제든지 나를 버릴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졌다. 나는 그의 손에 맡겨있다. 나의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 권력자가  기분이 좋은지, 심기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늘 살피고 살폈다. 그러면서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었다. 도무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답을 모르겠을 때는 터져 나오는 억울함과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화는 낼 수 없었다.  화가 나도 울기만 했다. 깊은 자기혐오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사는 게 수치스럽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를 미워할 수 없어서 나를 미워하다가 나를 미워하고 살아온 삶이 억울해서 다시 그를 미워한다. 이것이 내가 맺는 관계의 본질이다. 내가 맺는 관계는 모두 아버지와 맺었던 관계의 재연이었다. 정당하게 화내지 못해서 뒤틀린 자아가 스스로를 망가트린 것을 알아차렸다.


'  좋은 사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살아왔는데 이젠 그만하려고 한다. '  좋은 사람' 되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그저 바라보는 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 지금 내가 아프구나.' '화가 나는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달팠을까?'  자아가 트라우마를 겪었던 그때에 멈춰있다면 지금의 나도 같이 머물러 옆에 있어줘야 한다. 그때의 생존 방식이 어린 나를 살렸지만 지금은  방법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끝낼  있다. 이전과는 다르게   있다.

제목 이미지 출처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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