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다른 사람의 향기가 풍깁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책인데, 작가는 기시미 이치로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새로운 이론과 사상에는 창작자의 이름을 붙이곤 하죠. 아들러 심리학은 아들러(Alfred Adler)라는 의사가 만든 이론입니다. 아들러가 한 방에 완성하진 못하고, 그의 제자들이 계승한 끝에 완전해진 이론입니다. '개인심리학'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들러는 정신의학과 의사입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함께 연구하며 심리학과 인간 성격을 깊이 있게 고찰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입장 차이로 갈라서지만, 두 사람 모두 심리학 역사에 한 획을 긋죠.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을 분석하는 데 있어 '행동의 목적'을 중시하는 심리 분석이론입니다. 사회 속에서 개인이 만든 생활 방식과 열등감을 파악하죠. 다양한 특징도 가집니다. 총체론, 목적론, 현상학적 관점 등등...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시미 이치로는 이 점을 파고듭니다. 어려운 아들러 심리학을 쉽게 해설해놓았죠. 아들러 심리학을 삶 속에서 써먹은 후 느낀 점을 말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아들러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법
정상과 비정상은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 걸까요? 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정상 :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비정상 : 정상이 아님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네요. 비정상은 정상에 의해 정의됩니다. 그런데, 특별한 변동은 누가 판단하는 걸까요? 탈이 났다는 건 또 무엇인가요? 혼자서는 정의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 기준이 다수의 합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특별하고 뜻밖의 일을 겪는다면 비정상인 겁니다. 정상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유동적인 개념인 것이죠.
아들러는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길 싫어했다고 합니다. 대신 그는 끊임없이 '정상이란 무엇인가?', '건강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죠. 답을 내리지 않고 고민하며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그는 환자를 직접 찾아가 친근히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찰했다고 합니다. 자신과 환자를 동등히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원인이냐 목적이냐
아들러 심리학은 '행동의 목적'을 통한 분석을 기반으로 합니다. 원인을 분석하는 견해와 정반대죠. 두 가지 상황 속에서 원인과 목적을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빵을 몰래 훔쳐먹었습니다. 가진 돈을 전부 도둑맞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며칠을 굶었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제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서 멋지게 조언을 해줍니다. 저는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첫 번째 상황은 돈을 도둑맞은 것이 원인입니다. 제가 가진 돈을 잃지 않았더라면 당신의 빵은 무사했겠죠. 두 번째는 당신이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어서입니다. 저는 그저 도움을 주고픈 마음에 조언을 한 것뿐입니다. 이 같은 관점을 '원인론'이라 합니다. 사건의 과거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아들러는 다르게 해석합니다. 빵을 훔친 이유는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돈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죠.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빵을 훔치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수학 문제를 도와준 이유는 멋지게 풀이를 마친 뒤 당신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도움을 주고픈 게 아니라 당신에게 암묵적인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죠. '목적론'입니다. 개인의 행동, 욕구, 열등감 따위에 초점을 둡니다.
두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 봅시다. 저는 도벽증 환자입니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참견하는 관계 망상증 환자이기도 하죠. 원인론은 과거에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물건을 훔칠 필요 없는 풍족한 환경을 제공하고, 주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 자체를 제거합니다. 목적론은 왜 빵을 훔쳤는지 탐구하고, 내면의 원인을 제거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지 않고도 배를 채울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노동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식으로 말입니다. 관계망상의 원인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라 여기고,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증상을 치료합니다.
사실 어느 것이 더 정확한지 따지는 것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환자를 여러 방면으로 파악해 빨리 치료하는 것이니까요. 감기도 따지고 보면 원인은 다양합니다. 낫기만 하면 되죠. 분명한 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이해한 의사가 환자를 더 깊이 있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오랜 연구와 경험 끝에 그 관점을 창시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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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겪은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경험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고, 그 경험을 해석하는 나의 주관이 나를 만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경험을 해도 내가 느낀 게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소리죠. 반대로 끔찍한 일을 겪었다 해도 내가 별 일 아닌 듯 여긴다면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들러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외부 세계의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 마음가짐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소방관은 일반인보다 6배가량 높은 비율로 PTSD를 앓고, 지진이나 해일이 지나간 마을에는 PTSD 환자가 수없이 발생합니다. 이들이 경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요? 아닙니다. 그저 몰려오는 재앙,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움만을 느낀 것입니다. 의미를 부여할 찰나조차 없었겠죠. 설령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 경험이 내게 줄 의미를 생각할 만큼 침착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정말 극단적인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방패 삼아 도전하지 않고, 습관을 핑계로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합니다. 왜 그런지 물으면 해오던 게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적어도 어떤 것이 변했는지 알고는 있어야 하지만, 그마저도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뻣뻣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의 과제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용기 있게 살아가길 기원한다.
이미 의미가 부여된 경험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경험에 기초한 다른 생각을 모조리 수정해야 하기에 그렇죠. 하지만 그 경험이, 내가 부여한 의미가 더 큰 세계로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뛰어넘기 위해서는 강한 용기가 필요하죠. 이 책이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을 강한 의지와 용기를 가져다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