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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꼰대짓으로 맞선다!

보여주기 식 공부하는 까닭(2)

by 들풀생각

※ 이 글은 2023년 4월 14일에 올린 ’보여주기 식 공부하는 까닭‘의 제2편에 해당합니다. 제1편은 바로 이전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늘 그렇듯이 내가 쓰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를 빼고는 주제에 어울리게 우리 주변에 늘 있을 법한 사람들의 특이한 성격을 짜내어 만든 가공의 인물임을 미리 밝힙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이란, 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호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하니 이를 잘 준수하여 이 이야기를 풀어보자.


​이 법 제2조(정의)의 제1호에 가면,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또는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한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고 하니,

이것들을 잘 살펴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게 이야기들을 마구 섞어야겠다.




어느 날 부서 장이 바뀐다는 소리가 들린다.


부서장으로 온다는 그는 영업과 영업지원, 경영지원(인사 & 기획)과 내부통제 부서에서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다. 회사 안에서만 엘리트로 통한다.


그에 대한 하마평(下馬評)이 무성하다. 회사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그를 보는 눈은 상극(相剋)이다.

윗사람에게는 교언영색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딱 그 반대로 행동하겠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나 혼자 ‘그는 필시 소인(小人) 일 게야!‘라고 되뇐다.


그는 민첩하여 정치적 셈법이 매우 빠른 데다가 자존심도 강하다. 그래서 남, 특히 아랫사람이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공격을 가한다.


나는 객관적인 잣대로 그 보다 한참 모자라니 ‘이건 다행이구나!’ 한다. 나 같은 조무래기는 같지 않아 보여 건들지 않겠지.

아니다!

내가 좀 어리바리해서 먹잇감이 될지도…


오지랖이 넓고 함부로 말하며 말을 빙빙 돌리거나 빈정거린다. 자기는 객관적•중립적인 시각을 다 갖추었다 하면서 남의 얘기는 흘러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남이 얘기하면 무조건 ‘그게 아니다!’ 라며 부정 먼저 하고 본다. 나중에 자기가 부정했던 얘기를 잊어버리고 자기 생각인 양 꺼내 말한다. 그리고 말이 A로 시작해서 Z로 돌아오기 때문에 너무 장황해서 듣기도 전에 하품부터 난다.


나는 남의 말 귀를 잘 못 알아먹는다고 집에서는 욕먹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득이 되겠군. 아무리 빙빙 돌리고 비꼬아도 난 못 알아먹을 테니…

또, 요즘은 마스크가 있어서 너무 좋다. 무조건 하품하면 되니깐! 그나저나 솔직해서 내 눈빛은 못 속이는데.


카톡 프사에 특정 종교의 믿음의 소리를 올려놓을 정도로 신념이 강하다. 자기가 몸에 좋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남도 다 좋아하는 줄 알고 먹기를 강요한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먹지?)


또 경제학 석사출신이라며 세상 속 경제는 혼자만 아는 듯이 말하고 자기가 읽은 책은 남들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투로 말한다. 가령, “어떤 책 다들 읽어 봤지?”를 입에 달고 산다.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사석에서 하지 말라 해놓고 자기가 도리어 꺼낸다. 배려인 듯 독단인 듯, 교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와 깊은 대화는 물론 정치와 종교 얘기는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겠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니 특정 종교와 정치가 너무 붙어 있다.

특히, 나는 그와 정반대의 시각을 갖춘 사람이라 정말로 입을 꾹 닫아야겠다.

그리고, 경제학 얘기를 꺼내면 글로벌 시사경제와 국부론과 자본론 그리고 정의론 또는 경제사상사로 대적해야겠다. 우리나라 경제학 석사들 저런 책들 거의 안 봤다더라. 원서는커녕 번역본도…

영어 좀 하는 사람들한테 바로 기죽는다고 하니 FT와 The Economist를 부적처럼 들고 다니련다.


좁은 사무실 공간에서 음식을 먹거나 쉴 때 자연의 소리를 잘 낸다. 그래서 탐욕의 화신이라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것은 나도 가공할 만한 최신형 생체무기를 하나 만들어 놓아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날을 위해 오래전부터 나는 ‘독성가스 소리 내며 뿜기’를 만드는 중이다.


이상의 꼰대짓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것은 ’상대가 자기보다 잘나면 깎아내리려 하고 못났으면 밟으려 한다.‘ 라 한다.


주변에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꼰대상이다.

내가 꼰대가 되어 봐서 잘 아는데 이런 부류는 대개 객관적으로 자기보다 실력이 월등하면 바로 떠받든다. (참고로, 키가 175cm인 사람은 상대가 190cm 이상이면 올려다봐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그들 앞에선 고개 숙인다.)

그래봐야 내가 늘 마주하는 불만고객만 할까?


참으로 못난 사람이지만, 내가 또 그런 사람이라 그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모든 전략과 전술이 다 갖추어졌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부리 듯(以夷制夷), 꼰대는 꼰대짓으로 이겨내야겠다.




인사발령이 난 후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다.


자리는 바로 나의 왼쪽이다. 지나가는 불에 밥 익히기 치고는 너무나 우연한 일이다. 내가 늘 책을 쌓아두는 하필 그 자리에 앉는다니! 너무도 잘 되었다. 쓸데없이 잘난 척할 것도 없이 그냥 그리 되었다.


드디어 그분이 온다.


웬 걸,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고 책을 보며 빈정거린다.


“누구는 고시공부하나 보네. 진작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우린 여기서 못 봤을 텐데!”


나는 바로 되받아 친다.


“이 나이에 무슨 고시를 요?

그냥 에세이 보듯이 재미있게 봅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가져다 보십시오, 팀장님!”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팽팽한 기싸움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끝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시간이다.


판매회사가 운용회사를 상대로 청구할 구상권행사 업무와 관련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과 부진정연대채무가 회의 주제다. 민법 가운데서도 매우 어려운 내용이다. 채권자 취소권 및 채권자 대위권과 더불어 법학 전공자들도 많이 어려워하는 파트다.


우리 부서만의 회의인지라 비법학도인 부서원들 모두가 깊이 알고 있을 이유가 없다. 갑자기 내가 일어나 예를 들어가며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내가 잘난척하며 실력을 발휘한다.


마무리에 가서 ’자세한 내용은 교과서 몇 페이지를 참조하십시오!‘하고 끝낸다. 필요하면 가져다 읽어도 좋다고 알려 준다.


내 자리에 옆에 있는 교과서 얘기에 그분은 ‘아차!’하는 눈치다. 고시 준비가 아니라, ‘일을 잘하려고 공부하는구나!’ 해야 할 텐데.

그럴 리가. ‘저놈 잘난 척하는 거 좀 보소!’ 하겠지.




그날이 지난 며칠후다.


내가 또 쐐기를 박고자 은근히 그분에게 다가간다. 내가 행정안전부장관이 공식으로 인정한 국가공인행정사임을 에둘러 말한다.


그분은 자기가 갖추지 못한 국가공인 자격증 소지자라 하면 또 꼬리를 내린다.

물론, 이 자격사는 시행된 지 10년 차라 공무원 빼고는 잘 모른다. 이것은 법무사(법원직)나 세무사(세무직)처럼 행정직 공무원들의 퇴직 후 밥그릇 챙길 용도로 생겼다. 공무원은 일정한 경력으로 그냥 받는데 나 같은 일반인은 시험을 쳐서 붙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거리의 변호사라지 아마. 행정법률전문가인 이 자격증은 일반 직장인들에게 크게 대우받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은퇴 후, 자기 사무소를 내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업무에 바로 쓰면 금융분쟁조정전문가다.

그 까닭은, 시험과목이 민법과 행정법 그리고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과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다수 과목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1차는 필기로 2차는 모두 사례형 논술인데 민법을 2차에서 논술로 보는 시험이다.

민법을 논술로 보는 시험은 이것 말고 변호사와 법무사 두 개밖에 없다 하던데..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그는 더 이상 나를 건들지 않는다. 도리어, 대놓고 나를 전문가라 부른다.


그리고 나에게 민법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물어온다. 나는 그냥 민법학자들이 쓴 민법교과서(대략 2,000페이지)를 읽고 법무사용 동영상 강의(150시간)를 듣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대답한다.


그러고 나서 또 분위기가 싸해진다.


내가 한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 자기 자리로 가서 뭔가를 출력한다. 나중에 보니 인터넷에 떠도는 민법 조문집 요약인가 본다. 저걸로 단기 속성 민법을 공부하려나 보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분명히 제대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으니.


아마, 저걸 또 달달 외워서 잘난 체하는 나를 꺾어보려 하겠지.


솔까말, 난 처음부터 내 라이벌은 오직 나뿐이라 별로 신경도 안 쓴다. 그리고, 난 거의 20년째 교과서로 저걸 공부하고 있지만 너무 어려워 어데 가서 잘난 척하기엔 많이 그렇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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