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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고 술을 줄인 까닭

by 들풀생각
얼마 전에, 회사로 10여 명의 민원인들이 단체로 방문하였다. 이들은 모두 3년 전에 어떤 운용회사가 설정하고 우리 회사가 판매한 사모펀드에 투자하였다.

그러나, 자본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237조 1항 및 시행령 제256조에 따라 펀드의 환매가 연기되어 아직까지 투자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판매회사로 찾아와서 항의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행정기관은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에 따라 행정기관의 장이 일정한 기준에 의거하여 다수 민원인 중 대표자를 3명 이내로 선정해 방문하게 할 수 있다. 금융회사 역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사건인지라 ‘법에는 눈물이 없다’와는 반대로 법에 의한 호소보다 감정에 따르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도 많다.

아무튼, 사모펀드투자로 손해를 본 거래고객들이 회사를 방문하여 6시간 이상을 면담하였다. 고성과 욕설을 들으며 손해금액에 대하여 금융분쟁조정제도의 절차 가운데 하나인 민법상 사적화해 방안을 고려하기로 하고 일단 모두 해산하였다.


자주 있는 일이고 또 맡은 일이라 생경하지 않고 그냥 무덤덤하다. 이 일을 맡은 지 10년이 지났다.


이 같은 고객 응대뿐만 아니라 민원이 발생하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관련법리를 적용하여 귀책사유를 근거로 불법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판단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주요 업무다. 최종적으로 민원 처리결과를 고객에게 서면 또는 전화로 답변하고 처리 근거를 고객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한다.


업무 강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가 돈 받고 하는 일 가운데 최고의 난이도에 속한다.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본성의 탐구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공부와 법학공부 그리고 영업현장에서 터득한 고객응대요령으로 이제는 이 업무가 내 몸에 완전히 배어 있다. 그래서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기도 한다. 간혹, 스스로에게 성격장애가 아닌가 물어본다. 물론, 이런 일들로 우울해하거나 분노하거나 또 대인관계상 특별한 하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보통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일 때문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남들처럼 여러 사람과 만나는 것보다 혼자서 운동을 하거나 독서 또는 사색을 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나는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 술을 자주 먹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다들 ’안물안궁‘하겠지만, 내 주량은 소주가 2병 반이고 막걸리는 3병 그리고 맥주와 연태 고량주는 주는 대로 마신다. 그러나 양주는 돈이 비싸서 제대로 실험을 해본 적이 없어 모른다. 그리고 한때는 골초라 불릴 정도로 담배도 많이 피웠다.


담배는 2005년 6월 23일, 그분과 The Economist를 정기 구독하는 조건으로 끊었다. 금연을 하였더니, 주변에서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친한 사람들이 나보고 ‘독한 사람’이라 한다.


나는 웃으며 또 받아친다.


내가 보기엔 담배를 피우는 여러분들이 더 독하고 옹고집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나이의 중년치고 의사로부터 분명 한 마디씩 안 들은 사람이 없을 텐데.

저렇게 담배도 피우고 고집도 피우니 말이다. 참말로 니코틴 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이다!


내가 생각해도 담배를 끊은 것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렇게 금연이 안되던 것이 잡지 하나 본다고 군말 없이 끊다니. 솔직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술은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억지로 찾아 먹지 않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먹자 하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그러나, 술은 딱 한 잔만 하고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다만, 금요일만 빼고.


사회생활하면서 엮고 엮인 사람들은 대개 금요일에 보자고 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점심 빼고는 그렇게 한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야 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는 금요일에 주로 본다.


나 빼고 1명~3명이 알맞다. 너무 많으면 소란스럽기만 하고 대화가 겉돈다. 만약, 나를 금요일에 보기를 꺼려하는 사람은 오래 알아왔더라도 관계설정을 다시 한다. 일대일 만남도 꺼린다면 그 역시도 다시 본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에 내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을 필요가 없다.


내가 평일에 다른 사람들과 술을 거의 먹지 않는 까닭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내 안에 남아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고 밝고 맑은 기(氣)를 채우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혜강 최한기 선생의 『기학(氣學)』에서 나오는 활동운화(活動運化)의 본성을 느끼기 위해서다.


평일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주제는 주로 회사일과 관련된 것이다. 특히, 직장상사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불만과 자기 자랑과 자녀 교육과 같은 얘기가 많이 오간다. 아니면 스크린골프나 당구와 같은 잡기 실력 연마가 목적이다.


연예인들 특히 말을 많이 하며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집에서는 거의 말도 잘 안 하고 내성적이며 두문불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직업적으로 너무 많이 떠들었으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일 거라 추정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동병상련(同病相憐)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이 멀다 하고 울려 퍼지는 불만고객들의 전화와 민원 응대로 지친다. 낮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밤에 술자리에 가보면 또 상대편의 불만을 들어줘야 한다.


갑과 을, 을과 갑의 노릇을 바꾸어 보고 싶은데.


맞는 표현인지는 몰라도,

상생相生(형이상학)이 상극相剋(변증법)이고, 상극이 상생이라는 생극론(生剋論)을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구체화하여 차등을 비판하고, 평등을 대안으로 삼는 단계를 넘어, 대등의 관계로 까지 나아가는 전략적 구성을 실천해 보고 싶은데…


뭔 사람들이 그렇게 불평불만을 많이 달고 사는지. 나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고 싶은데. 다들 자기 얘기하느라 내 얘기를 안 들어주네. 그리고 나는 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개인 정보 보호법 때문에 어데 가서 함부로 내가 한 일을 막 떠벌일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일찍 돌아가서 달리며 하루일을 반성하고 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는 늘 인문고전을 가까이하며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다. 그리고 품위 있게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분석한다.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가지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써먹는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요즘 내가 올라는 글들의 주요 소재다. 그렇게 해 놓고 나면 다음에 별별 희한한 성격의 불만고객을 응대할 때 편하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일에 술을 잘 먹지 않는 또 다른 까닭은,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내 일을 정말 잘하고 싶어서다.

말 그대로 Professional Expert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술을 먹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전날 술을 먹고 나면 다음날 오전에 목이 갈라진다. 나는 주로 막걸리를 잘 마시는데 특히 더 그렇다.


한 번은 내가 자주 가는 여의도 신안홍탁에서 파는 걸쭉한 농주를 먹은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 08:20에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을 닮은 듯한 고객이 전화를 걸어와 불만을 토로한다. 저가의 추석 선물을 하나만 주어서 불만이라 한다. 무슨 소비자를 차별해서 대우를 한 권익침해라 주장한다. 추가로 하나 더 달라고 한다. 그때 중저음의 억센 경상북도 억양으로 민원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기각)로 답변한다.


가뜩이나 자기의 주장이 인용되지 않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고객이 나에게 불의의 타격을 날린다.


‘아저씨!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왜 그렇게 사무적으로 전화받으세요?’


목소리가 걸걸하고 말이 딱딱하니 불친절하다는 말을 돌린 듯하다. 처음엔 아저씨라 해서 매우 언짢았는데 ‘이제는 아저씨가 맞지!’ 한다.


아주 오래전, 경찰이 사무실 압수•수색을 하면서 PC에서 모두 손을 떼라 했는데, 한 여직원이 컴퓨터 자판을 뚜드리고 있었다.

(업무상 매우 중요한 매매 주문을 처리해야 해서 그랬다 한다.)

그걸 본 경찰이 갑자기 ‘“아줌마!!!”라고 소리 지르니, 얼마 전에 결혼한 그 직원이 갑자기 “아줌마 라뇨!”하며 큰소리로 되받아 쳤다.

그는 얼굴이 뻘게지며 ‘아줌마 보고 아줌마라 했는데…’하며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소릴한다. 내 자리 바로 뒤에 서 있어서 나만 그걸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여직원은 못 들은 듯했다.)

분위기상 억지로 웃음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내가 녹취기록을 통하여 내 목소리를 다시 들어봐도 그 고객이 짜증을 낼 법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같이 한 사람을 모두 배려하고 싶다.


희한하게도 나는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그간 읽은 책의 내용이 모두 술술 나온다. 다른 이들 앞에서 지식자랑을 못한 것에 대한 한 풀이다. 상대방에게 쉬지 않고 일장 연설을 한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얼마나 상대방이 듣기가 싫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이나 사상이나 경제 같은 이야기를 꺼려하던데.


여기서 글로 더 설명하면 독자분들이 또 짜증 낼까 두려워 여기서 멈춘다.




위와 같은 것들 때문에, 나는 가급적 평일에 거의 술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매주 금요일은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일부러 먹자고 한다. 대신, 모든 술 계산은 내가 한다. 대부분 고향이나 대학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은퇴 후 나의 삶을 함께할 동반자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친구들 중에서도 욕심이 많거나 불평이 많은 이들은 애저녁에 모두 다 끊었다. 그냥 그들은 학교 동창회 모임에서나 만나 이야기 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도 역시 나를 그렇게 볼 것이다.


오늘따라 금요일 날 자주 만났던 둘도 없던 단짝이 그립네. 2018년 3월 비 오던 날 내 손으로 다시는 못 돌아 올 길을 멀리 떠나보내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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