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 녹색의 위로

과연 나도 식집사 ?

by Brand New Holiday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주변의 녹색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가끔은 어린아이가 개미를 밟아 죽이듯이 무의식적 장난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계절 바뀜을 알 수 있는 찰나의 감탄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유년 기간의 시골 생활 이후, 약 30년이 흘러 현재는 집의 가장 큰 거실 창을 바라보아도 나와 같은 거실 창을 가진 반대편 아파트만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심어져 있고, 접근 금지의 펜스가 쳐 있는 아파트 조경 나무들은 있으나, 모형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 식물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관리가 필요한 것을 집안에 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집안에 자기 고집이 점점 커져 가는 작은 아이들로 충분히 지치기에. 가끔씩 유치원에서 받아오는 상추, 토마토는 잠시의 방치 후에, 끝내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계획 없는 주말, 아이들은 소꿉놀이 슬라임을 시켜 주고 난 책을 읽을 요량에 식물들이 있고, 빵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대형 화원에 갔다. 아이들은 넓은 화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다, 체험 키트인 소꿉놀이, 슬라임에 몰두해 있었고, 난 극락조와 몬스테라 등등으로 꾸며져 있는 화원을 머리 숙여 피하면서 이리저리 구경 중이었다. 식물 잎사귀들이 내 어깨, 머리를 스칠 때마다 뭔가 모를 기분 좋음이 느껴졌고, 유년 시절 일상 속에서 보았던 당연하고 귀찮은 녹색이 향수로 다가왔다. 넓은 화원을 여기저기 들쑤시듯이 돌아다녔고, 키우기 쉽고 잎이 커서 녹색이 많은 몬스테라,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두 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액자와 같이 놓아도 보고 거실 구석구석 놓아가며, 빛을 적당히 받으며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최적의 장소를 찾고자 했다. 마침내 거실 한편에 데리고 온 두 녀석을 고이 모셔두고, 핸드폰을 위아래 앞뒤로 움직여 가며 사진을 찍었다. 마치, 예쁜 장식품을 사온 것처럼.

1*alejhxIE8YfnWlAEXpL0qA.jpeg

플라스틱과 잡동사니로 가득한 집에 녹색을 보고 있으니 이질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그 시선에서 뭔가 모를 청량감과 함께 휴식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분을 바라보면서 멍하게 있는 시간이 잦아지고, 점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좀 우습기는 하나 가장 좋아하는 시선은 허리 정도 되는 몬스테라 옆에 누워 아래에서 몬스테라 잎으로 가려진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 누워 괜히 숲속에 있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해보며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아내는 화분 두 개에 오바를 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젓는다.


또 하나의 식물을 키우기가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것은, 화분에 담겨져 물을 누가 하사해 주기를 기다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시스템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유롭지 못하고 본인의 생명을 타인에게 양도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의 미래도 의지대로 되지 않음이 화분 속에 있는 식물과 같은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화분 녀석들로부터 꽤나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다.


거실 한쪽에서 절제된 빛과 물만으로도 싱그러운 초록을 만들어 내는 식물에게 위로를 받는다. 지금도 그렇게 나쁘진 않으며, 이 순간 초록초록 살라고.


식물을 싣고 오는 날, 결혼하고 처음이라고 아내가 알려줬다. 죄송 & 머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