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캠퍼
성격상 반복되고 변화 없는 상황을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어린 시절에도 장래 희망으로 공무원, 선생님, 공기업은 항상 배제했다. 물론 어린 생각에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알 리가 없었거니와,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안정된 직장이 단순히 변화가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어느 순간 적응하다 보면 단순함을 느낄 때가 많다.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나의 커리어는 점점 꼬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또 조급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러한 생각이 몇 년간 지속되면서 스트레스가 점차 쌓여갔다.
그러던 중 코로나 시국을 맞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여 캠핑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보다 한참 지난 24년부터 캠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코로나 시국이 진정되면서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외벌이와 넉넉지 않은 월급에 두 아이와 해외여행은 불가능했다. 제법 커서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지만, 매달 마이너스 재정이라 자연을 보여주며 추억을 쌓기엔 캠핑만 한 것이 없었다. (처음엔 캠핑이 저렴하게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지만.)
캠핑이 나에게 주는 신선함은 한마디로 “불편하고 힘든 여유”이다.
처음엔 당근을 통해 40만 원에 장비 처분을 구입하여 캠핑을 떠났다. 설렌 마음에 강원도 바닷가로 출발했다. 첫 캠핑에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허리보다 조금 높은 정도의 텐트 사이즈 덕분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으며, 밥 먹고 치우고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다시 밥 먹고 반복하다 보니 철수 시간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자연 속에서 모닝 커피 한잔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따스한 햇빛 속의 여유는 없었다. 평소보다 아이들에게 더 소리치고, 아이들은 자연 속보다 나의 요청에 따라 즐거운 강제적 영상 시청을 하였으며, 벌레들 사이에서 움찔대는 미간만 있었다.
땀 범벅에 찝찝함과 함께 차에 올라타서 집에 오는 길에 매번 반복되는 재미없는 삶에 이벤트 하나를 끝낸 기분이었다. 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점은 이러한 이벤트는 내가 원할 때마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산, 바다, 숲, 강 어디든 이벤트를 만들 수 있다.
“여유”라는 것은 반드시 편안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끊어질 듯한 근육통과 예상치 못한 폭우 속에서도 가질 수 있음을 배웠다.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다음엔 어디로 떠나볼까 하며 아내와 서로 인스타그램을 뒤적뒤적하는 설렘도 좋았다. 아들도 가만히 자동차 창밖을 보더니 “너무 좋았어” 한마디를 건넨다. 캠핑이 좋았는지 무제한 영상 시청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