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쌓인 감정의 격랑들이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있을 때,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순간, 머릿속이 깊은 바다처럼 고요해진다.
잡념이 사라지고, 기쁨과 후회, 기발한 상상,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부끄러운 감정들까지.
나는 그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아무리 나 혼자만 보는 노트라 해도, 거짓 없이 솔직한 글을 남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조차 외면하고 싶었던 생각들, 합리화하고 싶었던 사실들을 글로 남기는 순간,
그것들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진짜’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를 냈다.
조금씩 나를 솔직하게 풀어놓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점점 설렘으로 변해갔다.
일상 속 스쳐 가는 단상을 붙잡아 글로 남기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생각보다 괜찮은 인간이네."
혹은,"내가 이렇게까지 쓰레기였다고?"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결국,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글쓰기는 재미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평소에도 별의별 생각을 하며, 남들보다 감정을 더 다채롭게 느낀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생각이 흘러가는데,
그게 단단한 주관이 되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억울함과 원망이 뒤섞인 감정이 치밀었다.
"아니, 그렇게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데, 왜 나는 제자리인 거지?"
"여태껏 그냥 감정낭비만 하고 있었던 건가?"
문득, 지금 이 감정을 흘려보내면 또다시 똑같은 답답함 속에 갇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해졌다.
이 순간을 붙잡아야만 했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지금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실 때 무조건 필기하던 습관처럼,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본능적인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장 하나씩 적어나가면서, 내 감정이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구나."
글을 쓰는 동안, 그리고 다 쓰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내 감정과 직면할 수 있었다.
최대한 꾸미지 않았다.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고, 날것의 단어로 표현했으며, 욕하고 싶으면 욕도 서슴없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가라앉았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점점 느려졌다.
나의 첫 글쓰기는 감정의 배설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솔직한 글의 힘이었다.
지금도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을 때면,
그때의 감정뿐만 아니라 글을 남기던 순간의 공기마저도 생생히 느껴진다.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보듯, 지나온 나의 서사가 또렷하게 감각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남기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