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내려오는 중입니다
주식 시장에서 '피크아웃'이라는 용어는 별로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주가가 최고점 피크에 도달했지만, 그 이상 더 올라가지 않고 이제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간단히 말해, 더 이상 오를 일 없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광고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금이 내 피크다’라는 순간들 말이다.
몇 년간 쌓아온 경험, 성공적인 캠페인, 클라이언트의 칭찬, 팀원들의 인정...
그럴 때마다 마치 내가 내 인생의 정점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위에 있는 건 구름과 해, 그리고 달 같은 자연뿐이다. 모두 내 발아래 있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준비해 왔고, 노력한 끝에 도달한 최고의 자리처럼 느껴진다.
피크에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꿈이자 목표다.
하지만, 피크에 있다는 게 정말로 좋은 일일까?
주식 시장에서처럼, 피크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의미 아닐까?
내리막은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개 들어 주변을 보면, 나와 동등한 높이의 피크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크에 올랐다.
그들 중 일부는 나보다 더 오래 서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이제 막 도착했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그들에게 내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피크에 도달하기까지 나를 이끈 원동력 중 하나는 이기심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싶었으며, 주목받고 싶었다.
그 이기심은 나를 끊임없이 앞서 가게 만들었다.
피크에 섰을 때, 그 욕망은 더 강해진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기심은 다시 날카로워지고, 손을 내밀기는커녕 밀어내고 싶어 진다.
‘박수 칠 때 떠나라’
낭만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박수가 들릴 때 떠나는 것이 쉬울까?
이기심으로 달려온 끝에 겨우 도달한 자리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쌓아온 노력과 희생을 떠올리면,
그냥 내려오는 건 너무 가혹하다.
피크에 섰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두는가는 중요하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여전히 열심히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내 자리를 양보할 마음이 생길까?
그보다는 내가 겪은 수많은 경쟁과 고통이 떠오르고,
쉽게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나를 날카롭게 만들고, 자리를 지키려는 욕망은 더 커져만 간다.
돌을 던질까? 기름을 부을까?
내가 느끼는 갈등은, 결국 이 피크라는 자리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준다.
한 발이라도 비틀리면 추락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추락은 하산보다 훨씬 아프다.
하산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추락은 불시에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피크에 있을 때 그 자리를 내려오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려가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상실감, 그리고 내려가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크에서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하산하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격려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성취일 수 있다.
다녀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피크에 올라 내가 봤던 그 순간을 제대로 기억하고,
내려가는 길 역시 의미 있는 여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운 피크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내려와 보면 안다. 내가 섰던 피크보다 더 높은 피크가 있었다는 걸
엄홍길처럼,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듯이.
피크에서 아래를 보지 말고 구름에, 해의 눈부심에 가려져 있던 위를 바라봐야 한다.
피크는 도달하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더 많은 도전과 성취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피크를 경험한 이들만이 아는 묘미일 것이다.
내가 더 많은 피크를 오르고, 더 많은 내려가는 길을 경험했을 때,
나만의 루트가 생기고,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피크보다는 그 루트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