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시 만나 웃을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by 이기적 J

어릴 땐 친구가 전부였다.
하루 종일 붙어 다니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같은 만화에 웃고, 같은 게임에 열중하고, 같은 바보짓을 하며 자랐다.

그때는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말이 잘 통하든, 생각이 같든, 뭐든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우리를 친구로 만들었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세계를 공유했다.


지금도 내게는 30년 넘은 친구들이 있다.
직업도, 학력도, 사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이라면 절대 친구가 되지 않았을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오래된 집처럼 연결돼 있다.
낡았지만 익숙하고, 가끔은 불편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집.


한 명이 우리 무리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 적이 있다.
“이젠 이 만남이 내 삶에 의미가 없다”는 이유였다.
말로는 생산성이 없다고 했지만,
듣는 우리는 마치 우리가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꼈다.
당장은 분노했고, 당황했고, 서운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은 변하고, 관계는 흐른다.
친구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강요할 수는 없다.
언젠가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욕 한 번쯤 하고, 또 예전처럼 웃을 수도 있을 거다.
왜냐하면 우리는 친구였고,
그 시간은 함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굳이 매일 안부를 묻지 않아도,
1년 만에 봐도, 2년 만에 봐도, 우린 여전히 편하다.
그건 그들이 내 뿌리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식적이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관계.
그게 어릴 적 친구들이 내게 주는 유일하고도 명확한 가치다.

그래서일까.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크게 목매지 않는다.
간절하지 않다.
이미 내 편이 있다는 안정감,
필요 이상의 관계가 주는 피로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확장’이 아니라 ‘필터링’하게 되는 나이.
필요성 없는 만남은 피하게 되고,
누군가를 굳이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냥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그건 냉소가 아니라, 평화다.
쌓인 관계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더는 누굴 통해 내가 보완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이미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