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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작가 Mar 28. 2024

최대한 많은 길을 거닐어라.

   만일 본인이 길치가 아니라면 뜨끔하는 구석이 없을 터, 또한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세상에 길치인 사람은 많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많은 길을 거닐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오히려 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닐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굉장히 큰 경각심을 지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갈피를 못 잡을수록 새로운 시도에서 더 날이 서 있기 마련이다.


   만일 당신이 길치라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길치인 내가 왜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봐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라면 다른 분야에서, 다른 일상적인 활동에서부터 더 많이 시도하고 즐길 수 있다. 왜 굳이 나에게 취약한 활동을 사서 해야 하는가?


   위 제안에는 사실 몇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첫 째는 도전정신이요,

   둘 째는 견문록의 확장이요,

   셋 째는 일탈에서의 즐거움이다.


   아무리 길치가 아니라고 한들,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은 낯설고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내키지 않는 일, 처음 하는 일 등을 할 때 몸이 선뜻 안 따라주던 것을 떠올려보라. 굉장히 유사한 경험일 것이다.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안 가본 길을 가 보는 것은, 비교컨대 회사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특히 인턴쉽이나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해야 할 때, 그런 익숙치 않은 때에 느낄 창피함과 온갖 수모보다는 백 배, 천 배는 나을 것이다. 오히려, "처음 하는 시도"에 스스로를 익숙하게 하는 과정이라 봐도 좋다. 이런 쉽고 간단해보이는 도전에도 쉽게 무르며 뒷걸음질친다면,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나는 그럼 도대체 어떤 걸 할 수 있겠나?


   앞서 견문을 넓힌다는 표현을 빌린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일, 안 가본 곳을 가는 일은 그게 자신이 살던 동네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견문을 크게 넓혀준다. 사람들은 여행처럼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일만이 견문을 넓힌다고 쉽게들 착각한다. 이를 테면, 한국에서 몇십 년은 살아왔으니 해외여행 정도는 가야 견문을 좀 넓혔다고 말할 수 있겠지-라던가. 허나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진정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이, 나아가 모든 것에서 배울 점을 찾듯이, 진정 새로운 곳을 거닐었다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옆동네가 될지라도 견문을 크게 넓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오늘 하루가 어땠느냐고 당신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매일이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단언컨대 10명 중 9은 될 것이다. 한 명분을 구태여 제외한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아직 존재할 그 "일탈"을 즐길 줄 아는 자들을 향한 배려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사실 잘 들여다보면 사회의 구성원이 되며 항상 챗바퀴같은 삶에 갇히게 된다. 사회가 정한 틀이며, 그 틀을 제작하던 사람들조차 이렇게 될 거라 예기치 못했을 것이다. 했을지언정,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자가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의 삶이 어느샌가 너무 무료해보인다면, 가장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일탈이 무엇일까 한 번 고심해보라. 필자는 물론 퇴근길에서 조금 벗어난 길을 걸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할 것이다.


   견문을 넓힌다는 것은 스스로가 그러고 있다고 깨닫지 않으면, 마치 숨쉬기처럼 미처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대한 많은 길을 거닐어보라. 그러면서 아주 작고 사소한 거라도 눈여겨보려 시도하라. 그것이 당신 스스로의 견문록의 가장 첫 페이지가 될 것이다.



   2024 0328 1643.

   일터에서 40분만에 쓴 글.

   그만큼 쉽게 쓰여 흰 여백에 오래 남아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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