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
2년 전쯤이던가?
아이가 내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고모네서 유리컵을 깬 적이 있거든. 근데 고모는 전혀 짜증내지 않고 ‘그럴 수 있어’라고 하더라? 나는 사람의 기본 마인드가 그래야 한다고 봐. 상대의 실수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이는 거.”
묘한 말이었다.
한편으론 괜히 심기가 불편해졌고, 또 한편으론 ‘내가 뭘 잘못했었나?’ 하고 돌아보게 됐다.
며칠 뒤, 아이는 또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기침하니까, 고모는 괜찮다는데도 바로 병원에 데려가더라?”
‘근데?’라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의 다음 말이 나를 상처 입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한테 그렇게 해준 적 없잖아.’
그런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웠다.
나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늘 일하느라 바깥에 있었고, 집에 돌아와 아이가 실수를 하면 “조심 좀 하지!” 하고 화부터 냈었다.
그래도 그렇지,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죽어라 일한 내 노력과 고생은 아이 눈엔 보이지 않는 건가 싶어, 괜히 서운했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알 줄 알았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살아왔는데, 왜 이런 사소한 일들로 내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져야 할까?
‘그 집 가서 살아!’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입을 꾹 다물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이년아, 그럼 그 집 가서 살아! 그 집 애, 내가 데려와서 살면 되겠네!”
그 말이 얼마나 싫었던지…….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진짜 그 집 가서 살고 싶다는 건 아니잖아.
왜 엄마는 항상 사람 말을 그렇게 비꼬는 걸까?’
그런 기억도 일상에 파묻혀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생활 리듬이 바뀌면서,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다.
몇 년 동안 엇갈리던 저녁 시간도 가끔은 겹치게 되었다.
아이는 수다쟁이였다.
새로 사귄 친구 하나하나의 성격, 선배들 이야기, 교수님 스타일, 여학생들에겐 관심이 없다는 얘기,
읽으라는 책 중 하나가 너무 재미없었다는 얘기…
심지어는 “엄마도 한번 읽어봐” 하고 권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들은 어느 날 한 번만 나온 게 아니다.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아이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기뻤던 이야기, 당황했던 순간,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 그리고 좋았던 감정들까지…….
나는 듣고 있으면서 문득, 아주 신기한 걸 보게 됐다.
아이가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뇌를 싸다구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2년 전, 스쳐 지나간 그 말 속에 담긴 깊은 의미가 갑자기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후벼 팠다.
아이가 필요했던 건 거창한 희생이 아니었다.
작은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지금에서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누구를 위해 진짜 희생해본 적도 없었다.
희생한다고 착각한 채,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그저 수다를 떨며,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그 순간에
기쁨과 안정, 그리고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던 거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사랑의 표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나의 행동을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피곤했다.
먹고사는 일이 벅찼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강해져야 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건 짧은 생각이었고 결국은 핑계였다.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24시간이면, 그 24시간 전부로 사랑하면 된다.
내게 사랑을 표현할 에너지가 100퍼센트면, 100퍼센트를 써야 한다.
5분밖에 시간이 없다면, 그 5분 동안 온 마음으로 표현하면 된다.
에너지가 5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5퍼센트만큼의 진심으로 표현하면 된다.
아이가 어릴 땐 그걸 해주지 못했다.
그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말 많이 아팠다.
그때, 신의 속삭임이 들렸다.
‘사랑의 표현엔 늦음이 없어. 사랑은 일회성이 아니야.
언제든 표현만 하면, 충만해질 수 있어. 그게 사랑이야.’
맞는 말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도, 사람은 여전히 사랑을 갈구한다.
‘신이시여! 나 좀 봐 주세요. 저 잘하고 있는 건가요? 못하고 있나요?
저 지금 우울해요. 아니, 오늘은 행복했어요.
신이시여, 저는 매일매일 사랑을 고백하고, 또 구걸하고 있어요.
근데 왜, 님은 아무 말씀 없으신가요?’
어? …신의 속삭임?
드디어… 대답을… 해 주셨군…….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중성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사랑을 바란다.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사랑의 표현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내 방식만 고집한 사랑은 상대방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나를 해치게 만든다면
그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나를 파괴하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그건 ‘호구’가 되는 일이다.
지금껏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막연히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정리하게 된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표현하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는 표현은 가식이 될 수 있다.
딱, 내 깜냥만큼 표현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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