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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

이런 걸 숙취라고 하는구나!

by 안이서

전두엽이 우~~~와~~~~왕, 조~~~~아~~~~왕 울리며 둥둥거린다. 꼭 중2병에 걸린 사내아이 같다.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짜증이 장난 아니었다.

이번 주, 사흘 연속으로 금주했다.

퇴근하기 전 ‘마실까, 말까’ 갈등을 겪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유혹을 이겨냈다.

예전 같으면 유혹이 오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넘어가 있었다.

퇴근 두 시간 전부터 술 마실 생각에 안달이 났던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거의 강박에 가까웠던 것 같다.

술을 꼭 마셔야만 내 하루가 정리되는 줄로 믿었던 거다.

‘느긋하게 술 마시며 유튜브 영상 보고 마무리하는 게, 내 삶의 유일한 낙인데.’

라고 했었다.

그 낙을 누리지 않으면 하루가 억울하게 느껴졌었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닌데) 잠에서 깬 나는,

지난밤 보았던 영상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야 과거의 나에게 따져 묻는다.

“도대체 뭐가 낙이었던 거야?

술 마시며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알딸딸하게 취하는 과정?

술 마시며 즐겁게 보았던 영상?

깨면 하나도 기억 못 하잖아?”


지금은 ‘유혹’이라는 정체를 확실히 안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난달, 술 없이 잠든 날이 아홉 번 있었다.

사실 술 없이 어떻게 잠드는 건지도 잊어버린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잠이 들지?’

이불 속에서 6~7시간을 뒤척이며,

‘잠들었던 건가?’ 하고 눈을 뜬 순간이 여섯 번도 넘었던 것 같다.

“어제는 잠을 못 잤어. 오늘은 한 잔 마시고 자야겠어.”

그렇게,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삶의 유일한 낙’에서 ‘잠을 자기 위해’로

나도 모르게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날이 지나면서,

그 ‘잠을 자기 위해’라는 변명조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일곱 번 깨던 밤이 다섯 번, 네 번, 세 번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엔,

이불 속에서 [녹슨 골동품 깨끗하게 씻는 영상],

[몇 번의 붓 터치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영상],

[헌 집 사서 아름답게 꾸미는 영상]을 보다

스르르 잠드는 재미도 꽤 괜찮다.

지금은 지난밤 내가 보았던 영상의 내용을 다 기억한다.

중간에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고,

‘한 시간밖에 못 잤네? 아직 잘 수 있는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남았어.’

하고 안도하는 그 순간, 어찌나 행복한지!

지난달부터는 술이 떠오를 때마다 내게 이렇게 물었다.

“술 취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재밌어?”

예전엔 알딸딸한 상태로 잠드는 게 참 재미있었나 보다.

왜 그게 재미있다고 느꼈을까?

그 장면을 15년이나 반복했는데도?

지금은 질문한 내게 이렇게 대답한다.

“별로, 재미없더라.”


14일은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이었다.

사흘 연속으로 금주를 성공했으니,

그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오늘 하루쯤은 마셔줘도 되지 않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생소한 고통에 당황했다.

이런 걸 숙취라고 하는구나!

그토록 친근했던 술이 무척이나 낯설어졌다.


육체는 고통스러웠으나, 영혼은 (아마도) 즐거웠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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