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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연민

자격 없는 슬픔

by 안이서

전에는 매일 아침 자책하면서도(미친 듯이 자책한다. 멍청이, 바보, 똥개, 세상에서 제일 못난X,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를 인간 등등)

저녁만 되면 술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뭐랑 마시지?’고민하는 시간이 어찌나 흥분되는지…….

살이 많이 쪘다. 13킬로그램 정도 늘었던 것 같다. 거울 볼 때마다 또 미친 듯이 자책한다.

‘멍청이, 바보, 똥개, 세상에서 제일 못난 X,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를 인간’에 ‘뚱땡이!’가 하나 더 붙었다.

술은 끊지 못해도 살은 빼고 싶어 그 후로는 ‘뭐랑 마시지?’라는 저녁 시간에 특정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저녁 메뉴는 그냥 술인 걸로.


매일 마시던 술을 두 달 전부터 걸러서 마시고 있다.

이런 의지가 어떻게 생긴 건지 참 신기했다. 그러다 어느 날 퇴근 때, 문득 와 닿는 이유가 떠올랐다.


15년 전 이혼 후 많이 힘들었다. ‘많이’라는 단어가 먼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살다보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때가 있다. 내 삶이 그런 주기로 들어선 것이다.

돈이 없어 왕복 80분 걸리는 출퇴근길을 걸어서 다닌 적이 있었다. 겨울이었고 그 해는 눈이 유난히도 많이 왔고, 날 향해 몰아치는 바람은 싸가지가 너무 없었다.

어느 밤 11시에 퇴근하는데, 눈이 살짝 녹은 길가에 흰 뭉텅이가 있었다. 가만 보니 작은 강아지였다. 춥고, 배고파 기력이 다 했는지 그 추위에도 떨지도 않았다. 그 아이 앞에 다가가 앉았다. 슬픔이 들어찬 강아지의 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기야…… 엄마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여기 있니?”


5분 정도 강아지를 들여다보다 일어나 내 갈 길을 갔다.

누군가 데려가지 않으면 강아지는 죽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었다. 더 슬픈 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두고 가야만 하는 내 처지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내가 먹은 건 편의점 샌드위치 두 쪽이었다.


잔뜩 웅크리고 언 발을 동동거리며 지나가던 그 장소. 지금은 퇴근할 때 그곳이 멀리 바라보이는 길을 지나간다. 택시 뒷좌석에서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나간다.

한동안 그 장소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서글픔이 밀려왔다. 과거의 내가 너무도 불쌍해서 코끝이 찡해졌다. 술로 그 마음을 달랠 수밖에.


두 달 전, 늘 그렇듯 그 길을 눈에 담고 지나가는데 문득 흰 뭉텅이가 엎드려 있던 바로 그 장소가 눈에 칼같이 들어왔다.

강아지가 죽음을 기다리던 그 날, 내 주머니에 남은 돈은 소주 값밖에 없었다.

그 하얗고 어린 생명이 소주 한 병보다 가벼운 게 돼 버렸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데, 온 세상이 미어지는 가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술이 ‘누군가의 생명’보다 더 소중했던 냉혈한이었다.

맙소사! 그런 나를 내내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다니.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찼던 세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에는 자기 연민에 빠져 술을 마셨는데,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금주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데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섞여 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 건 내가 ‘자기연민’에서 벗어난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자학의 감정에 빠져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도리어 지금은 좀 더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밤, 온전한 정신의 누군가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갔기를……, 이제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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