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숙명’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말도 있다.
숙명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것. 나비가 나비로 태어난 사실을 바꿀 수 없듯, 우리가 태어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운명은, 그래도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가족에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외할아버지, 외삼촌, 엄마, 남동생, 그리고 나.
중독에 유독 약한 유전자가 대대로 내려온다.
그 사실을 15년 전에 알았더라면, 내 중독을 막을 수 있었을까?
예방이 최선이라는 말은 진실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되풀이해 말한다.
“우리 집안은 중독에 약한 유전자가 있어.
그러니까 너희는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알았느냐?”
그러면 아이들은 으레 이렇게 대답한다.
“어머니나 어떻게 좀 해 보시지요.”
내 알코올 중독을 숙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처음 술에 의지할 때부터, 언젠가는 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언젠가’가 과연 언제인가였다.
그 날을 몰라서 15년을 방황하며 고통 받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괴로워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이런 의심이 들곤 했다.
‘나에게 술은… 혹시 숙명인 걸까?’
며칠 전, 책장 한 켠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
놀랍게도, 책 속엔 형광펜으로 요란하게 줄친 흔적들이 가득했다.
분명 예전의 내가 읽고 감탄했던 구절들. 그 몇 줄을 옮겨본다.
“사람의 유전자는 삶에서의 경험에 대응하여 끊임없이 변화한다.”
“삶에 대한 인식이 인체의 생물학적 조건을 결정짓는다.”
“믿음을 바꾸면, 성격도 바꿀 수 있다.”
“운명의 영원한 희생자가 아니라, ‘공동창조자’가 될 수 있다.”
그때도 내 마음에 깊이 박혔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왜 변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는 이 책을 읽고도 그대로였을까?
지금에야 안다.
그때의 나는, 신이 내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
즉 **‘의식’**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책을 읽고, 경험을 하고, 사유하고, 때로는 좌절하면서 성장한다.
의식이 충분히 단단해진 다음에야,
나는 비로소 내 안에 새겨진 유전자의 힘과 마주할 수 있었다.
신은 나를 진창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의식’을 주셨다.
그 의식이 제 힘을 발휘하기까지, 내게는 무려 50년이 걸렸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이해력이 딸리는 것도 유전자에 새겨져 있어서…….
(나의 의식아,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자.)
이해력이 딸렸던 나를 이제는 넘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끝내 해냈다. 결국, DNA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후우, 쫌 멋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