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3

안이서, 전생

by 안이서

안이서


‘회개와 새 삶 선원’은 미관을 신경 써서 만든 곳은 아니다. 20년 전 처음 영성 교육을 시작했을 때는, 천로산 아래에 20평 단층 건물 하나만 있었다.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 감화를 받은 몇 명은 자기 지역에 선원 분회를 열기도 했다. 덕분에 방문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었고, 그때마다 천로산 위로 올라가며 건물을 용도에 맞게 하나씩 세웠다. 산 아래 주차장도 만들고, 중턱을 평평하게 갈아 강당도 지었다. 방문객 숙식관, 직원 생활관도 생겼다. 감탄할 만한 경관은 없지만, 이서에게는 가장 소중한 장소였다. 그녀의 젊음이 벽돌 하나하나에 녹아 있다.

물론 그녀를 따르는 제자들의 소중함에 비할 수는 없다.

제자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었다.

문득 내면에서 목소리 하나가 올라왔다. ‘나다니엘은?’


그는 너에게 어떤 존재야?

우연히 영상 속 나다니엘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전기가 온몸을 통과한 것처럼 찌릿했고, 근육이 하나로 단단히 뭉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전생의 정보가 한꺼번에 수신됐다. 덩어리로 쏟아진 정보를 좌뇌가 이야기로 구성하는데 일주일은 걸렸던 것 같다. 그때 이서의 나이는 22살이었다.

나다니엘은 53세. 나다니엘은 20년 전부터 세포재생술을 받아 외모만 보자면 30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매일 그가 나오는 영상에 집착했었다.

시선이 오직 그에게만 박히고,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체온이 올라갔다.

화면 속의 나다니엘은 네 번째 부인의 얇은 허리를 감싸며 뺨에 키스를 했다. 네 번째 부인의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나다니엘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그녀는 모델답게 키가 컸다. 가슴선도 뷰티풀! 어메이징! 판타스틱! 했다. 눈, 코, 입도 시원시원해 웃을 때는 세상을 다 품는 여신 같았다. 나이는 이서와 같았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너는 왜 거기에 있는 거지?’

우습게도 혹은 엉뚱하게도, 나다니엘의 전생은 서루라고 불리는 여자였고, 이서의 전생은 서루와 사랑을 나눴던 남자였다. 세라이아.

서루의 맑은 에너지는 나다니엘의 푸른 눈에 담겼고, 신적인 존재 앞에서도 꺾이지 않던 자존심은 나다니엘의 우아한 체격으로 드러났다.


이서는 영상 속 나다니엘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다 옆의 찬란한 아내를 보고 순간 민망해져 내민 손을 거두었다.

‘너는 거기에 있는데, 왜 나는 여기 있는 거지?’


그 때 이서는 자신의 외모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 얼굴이 사람들 눈에 예쁜 편일까? 키가 너무 작은 건 아닐까?

‘도대체 사람들이 널 어딜 보고 예쁘다고 하겠니?’

이서는 외모에 대해 생각하는 걸 곧 포기했다. 자괴감으로 시작되는 이 감정이 생각을 계속한들 긍정적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다니엘이 외모, 재력, 한계 없는 이상향, 아름다운 아내(몇 명이나 되는) 등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건 아마 전생의 한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이서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그보다 훨씬 늦은 때에, 이곳에, 이 모습으로 태어난 이유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세 달 동안의 상사병을 접었었다.

22살이었던 이서는 지금 52살이다. 늙었다. 나다니엘은, 여전히 젊다.


나다니엘이 워낙에 튀는 인간이라 이서가 외면한다고 해도 그의 소식은 길거리에서, 차안에서 심심치 않게 접해야만 했다.

우주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포부,

종교는 철학의 대상이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일,

지구와 같은 조건의 행성을 발견했고 그 곳의 이름을 ‘노바리스 에테리아’라고 지었다는 소식, 노바리스 에테리아로 이주해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이루겠다는 선언,

여덟 번째 결혼식. 처음으로 모델 출신이 아닌 과학자라는 모델 같은 여자였다. 이름이 말리카라나?

여덟 번 째 결혼식이 가장 최근의 소식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잠잠했다.

이서가 자기 일에 몰두하려하면 할수록 우주는 그의 소식을 다양한 경로로 전해 주더니,

오늘처럼 선원이 쉬는 날엔 왠지 과하게 조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당 앞을 지날 때 텔레비전의 뉴스 소리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쳐다본 것이다.

화면 속엔 나다니엘이 있었다. 그가 이서를 똑바로 바라보며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안이서, 조만간 봅시다.”


‘이제야 너도 내가 생각났구나.’ 라고 여겼는데, 감정이 일지는 않았다. 그냥 덤덤했다.

이서가 에너지체 상태로 에덴스 아크에 간 건 나다니엘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서는 방금 내면에서 한 말에 강하게 동의한다는 듯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에덴스 아크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라고 변명 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늦게야 신바람 같은 게 올라와 강아지풀을 하나 꺾어 가벼운 걸음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다니엘을 몰래 보러 간 건 아니었어. 도리어 그가 여덟 번째 아내와 혹시 사랑이라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할까봐 겁이 났지. 에덴스 아크는, 우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더라. 도시 하나를 옮겨 논 것 같았어. 이주민들이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줄도 몰랐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더라. 그 활기 속에 묘한 낌새를 알아챘지. 불길한 에너지를 따라갔더니 두 명의 침입자가 큰일을 벌이려고 했어. 에덴스 아크를 폭파하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막는 수밖에.’

그렇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던 순간,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브레인폰 주파수가 이서의 송과체에 걸렸다. 이 선원에서 뇌에 칩을 심은 사람은 다연 한 명뿐이었다.

[선배.]

다연의 목소리가 이서의 뇌 안에서 울렸다. 그사이 자신의 숙소 앞에 도착한 이서는 벤치에 앉았다.

“그 선원 원장이 안이서 맞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렸다.

“응.”

“나다니엘이 그 사람을 지목했어.”

“알아. 뉴스 봤어.”

“넌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감시하라고 들여보냈더니, 그 둘이 내통하고 있었다는 건 알아챘어야지.”

“그런 낌새 전혀 없었거든.”

억울함이 묻어난 다연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뉴스 보고 깜짝 놀랐어. 사형은, 나다니엘이 우리 스승님을 말한 게 아니라고 여겨.”

“……야. 그 마귀 무리가 언제부터 네 사형이고 스승이 됐냐?”

“그런 거 아니야.”

“그 여자는 지금 뭐 해?”

“그냥…… 앉아 있어.”

그 대답이 끝나자, 이서는 다연이 어디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 식당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성거리던 다연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멀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분명 한순간 마주쳤을 것이다. 다연은 당황한 기색으로 몸을 돌리며 피할 곳을 찾는 듯 허둥거렸다.

“끊어.”

“끊긴 뭘 끊어! 아직 본론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그 여자 없애버려.”

“뭐?”

살다 살다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감정이, 다연의 한마디에 그대로 실려 있었다.

“사람을 왜 죽여? 난 그냥 감시하러 온 거지, 누굴 죽이려고 온 게 아니야.”

“네 눈엔 그것들이 사람으로 보여?”

“…….”

이들과 함께 살기 전까지, 다연은 그들이 머리와 심장 속에 비수 하나씩을 숨기고 사는 존재들이라 여겼다. 언제든 신을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마귀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다연의 침묵에서 변심을 감지한 선배가 낮게 말했다.

“그것들이…… 널 홀렸구나.”

다연의 머릿속은 완전히 뒤엉켜 있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녀는 브레인칩에 통화 종료를 명령했다. 그리고 선배의 번호를 차단했다. 지금은 스승의 시선에서 몸을 숨길 곳을 찾는 것이 급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생각을 나다니엘에게로 옮겼다.

‘당신은 매일 이런 살해 위협을 막아내며 살고 있는 거군.’

다시 한 번 에덴스 아크로 가 볼까 하는 유혹이 스쳤다. 테러범이 잡힌 뒤 상황은 안정되었을지, 나다니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를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낼까. 아니면, 직접 이곳에 올까.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이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고,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오전에 아무 생각 없이 에너지의 몸으로 에덴스 아크에 향했던 일도,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단순한 충동은 아니었던 듯했다. 누군가를 구해야 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연의 의중을 의심하느라 매일 기가 빠지는 기분이었는데, 그 아이가 결국 올바름을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그날, 이서는 사람들을 구했다. 그리고 나다니엘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날은 유난히도 따스했다. 졸음이 서서히 밀려왔다.

이서는 벤치에 몸을 맡긴 채, 행복감에 잠겨 짧은 잠에 들었다.


오래전,


에너지체 차원에 머물던 세라이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예감을 받았다.

어떤 행성의 한 생명체에게 문명을 일굴 수 있는 이성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성을 잘 드러내도록 에고를 갈고닦는 것이 수행이다.’

결국 신성을 생각과 말, 행동 속에 온전히 구현해 낸 각성자들은 에너지체 차원의 삶을 누리다, 새 인류의 영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임무를 맡고 특정 행성으로 향한다.


세라이아는 내심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득히 오래된 기억이라 꿈결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한때 그는 분명 육체를 지닌 존재였다. 광활한 세계를 눈에 담았고, 다정한 소리와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으며, 단맛과 쓴맛을 몸으로 겪었다.

육체가 겪는 고통마저도 지금에 와서는 영광스러운 상처처럼 느껴졌다.

자고로 육체의 삶이란 치열한 생생함이다.

그리고 뜨거운 모험이다.

세라이아는 그 삶을 다시 경험할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지구였다.


지구의 바다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는 물결마다 서로 다른 색을 남겼고, 파도는 오래된 기억처럼 해안을 두드렸다. 짠 향기와 함께 날아오른 갈매기의 울음은 하늘과 물의 경계를 잠시 흐리게 했다.

바다는 격정과 평온을 동시에 품은 채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사막의 밤은 또 다른 장엄함을 드러냈다.

낮의 열기를 내려놓은 모래는 별빛을 받아 은은히 빛났고,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우주의 숨결은 더욱 또렷해졌다.

우주.

우리 영혼들의 고향.


산은 시간을 쌓아 올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라이아는 산으로 들어갔다.

새벽의 숲에서는 밤새 머금은 안개가 잎맥을 따라 흘러내렸고, 햇살은 그 안개를 비집고 들어와 초록을 금빛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무들은 서로의 어깨를 건드리며 낮은 속삭임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숲 너머에서 극에 달한 긴장감이 내달리고 있었다.

세라이아는 주저 없이 그 방향으로 이동했다.

거친 가죽을 몸에 두른 소녀가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달리고 있었다.

몸은 이미 피로에 잠식돼 있었지만, 잠시도 걸음을 멈출 여유는 없어 보였다.

세라이아는 에너지를 모아 단단히 응집했고, 육체를 형성한 뒤 소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악!”

짧고 거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소녀는 뒤로 넘어졌다.

그녀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들이 거친 숨의 리듬에 맞춰 아픈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세라이아는 소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빈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미안해. 널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소녀는 주저앉은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세라이아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뭐지? 이런 모습을 한 인간은 처음이야.

믿어도 되는 존재일까. 아니면 위험한 존재일까.

머릿속에서 잡다한 생각들이 쉼 없이 터져 나왔다.

세라이아는 조심스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일부러 걱정스러운 눈빛을 더해, 소녀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 했다.

“이 상처들… 왜 생긴 거야? 많이 아프지?”

세라이아의 손길이 다리의 상처로 향하자, 소녀는 재빨리 다리를 끌어안고 주먹을 치켜들며 외쳤다.

“만지지 마!

너는… 뭐야?”


세라이아는 소녀에게 의식을 집중했다.

조심스럽게, 깊은 물속으로 잠수하듯 그녀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사랑하는 이웃들.

탄광.

거친 노동.

채찍질과 비명.

복종. 배고픔. 두려움.

불균형.

분노.

은밀한 단합.

짧은 저항.

그리고 실패.

번쩍이는 빛처럼 스쳐 지나간 장면들 속에, 공통된 이름이 있었다.

신족.

창조주.

달.

그리고—

달은 창조주였다.


세라이아의 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소녀와 그 무리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진화한 존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의지로, 설계되어 태어난 ‘이성’이었다.

이성은 필연적으로 질문을 낳고, 질문은 문명을 부른다.

문명은 스스로를 확장한다.

그러나 그 확장을, 신족이라 불리는 자들이 막고 있었다.

그들 역시 한때 창조된 존재들이었으나, 이미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의 성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세라이아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떠올렸다.

물질 문명이 피어날 토양 위에, 영성의 씨앗을 심기 위해.

그런데 이곳은 이미 누군가의 개입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앞서 걷던 소녀의 발걸음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땅에 무너졌다.

세라이아는 재빨리 다가갔다.

의식은 희미했고, 몸은 열기로 달아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

이곳의 질서가 얼마나 견고한지도, 자신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도.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이 아이를 살리는 것.

핍박을 피해 도망치던 소녀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이 만남은—

이미 짜인 흐름의 한 지점일지도 모른다고.



노바리스 에테리아 1부 연재는 여기까지.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작가의 이전글교정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