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2

교정본

by 안이서

“스승님, 여기 앉아서 보세요.”

라고 다연이 말했지만, 이서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이 대화해도 스승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졌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설마, 나다니엘이 말한 안이서가 우리 스승님은 아니겠지?”

“아니겠지.”

라고 대답했다. 세상에 ‘안이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뿐이겠는가. 강률의 생각에 나다니엘은 과하게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이고, 스승인 이서는 과하게 단출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나다니엘이라는 세계적 거물이 산 구석에서 숨다시피 사는 스승을 알 리가 만무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미묘한 긴장이 가슴 구석에 자리 잡았다.

보통 자기 이름이 들리면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기 마련인데, 얼핏 본 이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다연의 심장이 뛰었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나다니엘이 이주민 지원자 중에 종교지도자는 안 받기로 했데. 대신에 영성지도자를 찾기로 했다는 첩보가 있어.”

다연이 속한 청년회 모임에서 명재가 한 말이었다.


에덴스 아크의 축조가 거의 완성돼 갈 즈음 나다니엘은 전 세계에 이주자 지원을 받는다고 발표했었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라니……, 소식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 낭만, 모험, 호기심, 위험 등, 별의 별 감정과 반응이 떠올랐고, 사회, 과학, 철학 차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었다.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다.’

‘또 하나의 바벨탑을 멈춰라. 그는 신의 이름을 훔치고 있다.’

‘신께서 침묵하신다고 해서 인간에게 창조의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가 만들겠다는 문명에는 구원이 없다.’

라고 외치는 강경 반대자들이 있었고,

‘아브라함도 떠났고, 모세도 떠났다. 떠남이 언제나 죄였던 건 아니다.’

라는 주장과 ‘아브라함과 모세는 하나님의 안내로 떠난 것이다.’ 라는 반응. 그리고

‘나다니엘도 하나님의 안내를 받았는지 누가 아는가?’

라는 말들도 떠다녔다.

한 불교 지도자는 “별이 바뀐다고 번뇌가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내 마음 속을 탐험하는 데는 그 많은 자원도 사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몰입과 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라는 다소 김 빠지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대중적이지는 않은 뉴에이지 계열의 사람들은

‘이건 탈출이 아니라 상승이다. 지구는 이미 너무 무거워졌다. 노바리스 에테리아는

다음 주파수의 문명이다. 그런 통찰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을 데리고 가라!’

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말들이 넘치도록 많아 아예 관심을 끄고 사는 게 마음 편하기도 했다.

다연의 입장이 그랬다. 신앙이 두텁거나, 종교철학이 마음에 와 닿아서 종교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다. 믿고 의지하는 게 편했고, 짜여 진 프로그램 안의 생활이 익숙했을 뿐이다. 물론 다연은 자신이 믿는 신을 사랑했다. 그 신은 어느 때는 잘생긴 이성의 느낌으로, 어느 땐 인자한 할아버지 느낌으로 다연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다. 다만 그 위로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점이 불만이긴 했다.


하여간, 다연은 나다니엘이 새 바빌론을 짓는 것이건, 사탄이건 관심 없었다.

그래도 언론에 나오지 않은 소식을 은밀히 알고 있는 명재가 신기해 물었다.

“오빠는 그걸 어떻게 알아?”


명재는 아르마게돈의 일원이었다. 자기가 한국 지부를 설립했다고 으스대기도 했다. 다연은 그가 멋져 보였다. 늘 평평하기만 한 자신의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즈음, 명재가 다연의 앞에 평생 밟아 본 적 없는 트램펄린을 놓아 준 것 같았다.

“한국에서 꽤 큰 영성기관이 몇 군데 있어. 그 중에 넌 ‘참회와 새 삶 선원’에 침입해 있어.”

일 년 전의 일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중요한 사람으로 선택된 것 같아 짜릿했다.

8개월 동안 ‘참회와 새 삶 선원’의 일반 센터에서 수련을 받았다. 본진에 침투하려고 정말 열심히 수련했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성장하고 싶은지 없는 열정까지 끌어 모아 이야기한 후 안이서의 옆으로 올 수 있었다.

도전해 본 적 없던 삶에서 성취하는 삶으로 돌아서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온 몸이 코팅됐다. 하지만,

아직 자기 안의 신성은 만나지 못했다.


‘이들의 지도대로 나는 수행했고, 기(氣)적인 체험은 잘 하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신성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계속 하면 나도 체험할 수 있는 게 맞나?’

아니 ‘내가 신’이라는 건 사탄의 유혹이다.

자부심에 덤으로 끼어드는 의혹과 죄책감에 힘들기도 했다.

매일 신성과 함께 하고 있다도 말하는 사형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옛날 깨달음을 얻은 인물들은 죽지도 않고, 모습도 다르게 할 수 있고, 물 위도 걷고, 귀신도 쫓아냈다. 하지만, 이들은 할 줄 아는 게 먹고, 말하고, 숨 쉬고, 웃고, 똥 싸고, 자고……. 도무지 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들은 자기가 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도리어 편했다.

아르마게돈 일행과 함께 할 때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 계속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쾌감 같은 분위기였다면, 선원의 사형들과는 순진한 6살 아이처럼 맑음의 느낌이랄까? 이곳에서는 우울함이나 냉소적인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점점 이 곳이 좋아지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오늘 뉴스를 보고 당혹의 그림자가 다연을 덮쳐눌렀다.

뉴스를 봤다면 명재에게 전화가 올 것이다. 벌써부터 가시밭길에 맨 발을 올려놓은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사형.”

다연이 강률을 불렀다. 강률은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 다연을 쳐다봤다.

“나다니엘이 말한 사람이 우리 사부님일 수도 있잖아요.”

강률의 마음 한곳에도 그런 직감이 점을 콕 찍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강률은 지기개를 켜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사부님 얘기인지 아닌지…, 우리랑은 상관없잖아.”

하고는 리모컨으로 뉴스가 아닌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리모컨이라니……. 음성 인식도 안 되는 텔레비전은 저것 단 하나 남아 있을 것이다. 다연이 보기에 강률은 어떤 영상을 볼지 관심 없다. 그냥 구석기 시대에 아무 생각 없이 모닥불을 뒤적이는 현대판의 모습이다.

‘나도 저렇게 태평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형, 전 숙소에 가서 좀 쉴래요.”

강률은 다연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답도 없이 채널 사냥 중이다. 그래서 다연도 그냥 그를 남겨두고 나왔다.

저 아래 강아지풀을 한 손에 쥐고 지휘하듯 살살 흔들며 걸어 내려가는 이서의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이 아이 같다.

그때 다연의 머릿속에서 브레인폰이 울렸다. 발신자가 눈앞에 떴다.

[명재선배]



영상 속 그녀


그때 나다니엘은 에덴스 아크 안, 자신의 집무실에 있었다.

다른 이주자들에게는 개인 물품을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요구했지만, 그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수백 권의 종이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누군가의 불만을 듣지 않으려면, 이 방은 오직 나다니엘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이 집무실은 단순한 개인 공간이 아니었다.

우주선 내 공식 경비실과는 별도로, 나다니엘만을 위한 감시실이기도 했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용도는 아니었다. 우주선 내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몇 곳의 CCTV만이 이곳으로 연결돼 있었다. 굳이 집무실 안에 이를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아르마게돈.

아르마게돈은 지하 조직이었지만, 그 세력은 날로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나다니엘 개인은 물론, 우주선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을 만큼. 연구센터 입구를 지키는 경비 두 명이 아르마게돈 요원이라는 사실도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을 면접하던 날,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와 연결된 AI는 눈동자의 미세한 흔들림, 얼굴 근육의 긴장, 입 모양과 손발의 움직임까지 빠짐없이 분석했다.

AI의 결론은 단순했다.

그들은 아르마게돈 소속이었다.

모든 거짓말을 꿰뚫어 보았음에도 일을 맡긴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다니엘에게도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강경파나 음모론자들의 문제는 이것이다.

시야가 너무 좁다는 것.

그래서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상대를 보지 않는다.

나다니엘의 지식과 기술은, 그들이 상정한 세계보다 수십 년은 앞서 있었다.

그때, 헬리오스 코어로 향하는 침입자가 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홀로그램이 작동하자 집무실은 곧바로 아르마게돈 실행자들이 지나가는 복도로 바뀌었다. 그들이 이동하는 동선 그대로, 나다니엘 역시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무기 점검해 줘.”

그의 명령에 AI가 침입자들의 장비를 스캔했다.

[세라프-9. 이중 폭탄입니다. 그 외의 무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헬리오스 코어에 위협이 돼?”

[그을음 정도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그 외의 피해는?”

[방어문을 내린다면, 피해는 침입자 두 명에 한정됩니다.]

『“이상하지 않아?”

“이 정도 시설이면 진작 들켰어야 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나다니엘의 귀에 들려왔다.

저들을 생포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죽음도 불사할 각오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경비요원들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

나다니엘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방어문 내려.”

AI는 즉시 명령을 실행했다. 동시에 두 실행자는 헬리오스 코어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중 한 명이 문에 폭탄을 부착했다.

그러나 부착된 폭탄은 스스로 떨어지며, 낮고 작은 목소리를 냈다.

『“안 돼.”』

그 소리에 나다니엘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됐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녀를 발견한 이후, 매일같이 들었던 목소리.

폭탄이 그의 눈앞에서 서서히 떠올랐고, 그 자리에 이서의 모습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이서…….”

당신도 나를 알고 있는 거지.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는 거야.

침입자를 확인할 때조차 고요하던 심장이, 그 순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성은 여전히 냉정했다. 폭탄이 그녀의 손에 있는 이상, 터질 일은 없었다.

“방어문 열고, 경비들 투입해.”

그렇게 침입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나다니엘은 곧바로 이서의 홀로그램을 재생했다.

사라지기 직전, 공중에 떠 있던 그녀의 모습이 그의 머리 위로 되살아났다.

‘그녀가 여길 어떻게 왔지?’

그것도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반물질 상태로.

인간이 아니라는 걸까? 아니면, 인간을 넘어섰다는 걸까?

나다니엘은 공중에 떠 있던 그녀를, 자신의 눈앞까지 천천히 끌어내렸다.

원래는 아르마게돈 실행자들을 향한 시선이었겠지만, 지금 그녀는 나다니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비난 대신 자비가, 증오 대신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나다니엘은 무심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아무 저항 없이 그녀의 얼굴을 통과했다.

그리움과 행복감이 동시에 밀려와, 그의 심장을 단단히 휘감았다.

몇 개월 전부터 나다니엘은 노바리스 에테리아로 같이 갈 영성가를 직접 물색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이 땅에 태어난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대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고, 처음부터 스스로를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명을 위대한 역할이나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명은 무엇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서느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시간과 장소,

이 몸을 입고 살아가게 된 조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까지.

그중 어느 하나도 가볍게 지나온 것은 없습니다.

사명은 확신의 형태로 오지 않고,

대부분 불편함으로 먼저 말을 겁니다.

계속 반복되는 질문,

도망치려 해도 끝내 마주치게 되는 상황,

유독 마음이 오래 머무는 장면들.

여러분이 애써 외면해 온 것,

그 안에 사명이 놓여 있습니다.』


그녀가 강론하던 영상을 본 순간 나다니엘은 알아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저 여인이구나.

그를 거쳐 간 여덟 명의 아내들을 처음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이것은 계산도, 선택도 아닌—

의심할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녀를 알게 된 뒤, 수천 번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못했다.

과거가 너무 많았고, 그 모든 과거가 그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안이서가 나다니엘을 구하려고 이곳에 나타났다.

[뉴스팀이 도착했습니다.]

AI가 그의 일정을 알렸다. 나다니엘은 발끝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이서 앞에 등장할 용기를 냈다.


오늘은 올린 글의 양이 꽤 깁니다. 죄송 ^.^;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교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