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추억은 돌아가는 게 아냐

by 쓰는사람 명진

여행자는 알고 있다.

여행지의 인연은 그때의 추억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을.

여행 분위기에 들떠 연락처를 교환해도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작년의 기억에 취해 다시 찾아온 지금,

문을 여는 발걸음이 작년보다 무거웠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피천득 님의 <인연>이 떠오르는 걸까. 그분도 그러지 않았던가.

첫사랑 아사꼬와의 세 번째 만남은

아니 만났어야 했다던 담담한 고백.

그래도, 나는 문을 열었다. 여행자의 직감이 말해줬으니까. 이 인연은, 다시 만나야 한다고.

적어도 감사 인사를 하고 와야 하니까.


저기, 저녁 식사 할 수 있나요?


"MJ~~~~~~~~~~~~~!!!"


오픈 키친 너머로 여주인 마마짱이 환하게 웃는다.

곁에서 조용히 일하던 부처 셰프의 인지한 미소도 동시에 날아들었다.


'잘 왔다. 오길 잘했어.'

때론 섬광 같은 순간이 복잡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정리해 줄 때가 있다.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들, '다시 오는 게 맞을까?'

그 모든 게, 봄날의 눈송이처럼 녹아 버렸다.


한달음에 주방에서 나와 꼭 안아주는 마마짱

식당 가득 앉은 손님들은 우릴 보고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줄 알았으리라.

가. 족.

가족은 삶의 겹겹이 중요한 고비를 함께 넘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의 만남에도 이들은 내게 가족이리라, 그러니 이산가족 불려도 괜찮을 것 같다.


자리는 작년처럼, 오픈키친 바로 앞.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구석이 아니라 중앙에 앉은 거랄까.


새로운 알바생이 내게 물과 메뉴판을 가져다 주자

그 모습을 보던 마마짱이 급히 손사래를 친다.

쭈뼛이며 메뉴판을 전할까 말까 하는 손짓에서

아마도 '메뉴판 안 줘도 돼~'라고 들은 듯하다.


마마짱은 내게 "오믈렛?"이라 물었다.

'하..........

1년 전 내가 시켰던 첫 식사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소소한 것을 기억하는 일이라던데

어쩌면 이것이 내가 다시 온 이유이리라.



인자하게 웃으며 셰프가 건네준 그 오믈렛 위엔

노란 달걀 옷 위로 내 이름과 하트가 소담히 올려져 있었다

말없이 전해지는 마음.

'다시 와줘서 고마워요. 또 만나 반가워요.

그러니 따뜻한 밥, 천천히 먹어요'

이 말을 들은 듯해서 숨을 크게 삼켰다.

오믈렛이 이렇게 감동적인 음식이었던가


그 따스한 기운을 느끼던 순간 바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한국계 재일 교포 3세 언니였다.

작년엔 영어를 할 줄 아는 모모카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았는데

올해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유미코 언니가 나의 메이트가 되어 준 것은 우연일까?


우연히 만난 인연과 장면들이

실은 누군가의 배려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사랑을 갚으러 왔지만, 결국 더 많은 이들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받을 줄이야.

어쩌면 인연이란 건, 결국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축복이 아닐까.


그렇게 오늘,

다시 만나는 길 위에서 가장 따뜻한 오믈렛을 만났다.




추억은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다시 만나는 길이 될 수 있어.



이 연재는 여행정보 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갑니다.

한 조각씩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함께 걸어주시면

슬픔이 희미해지고 다정함이 스며드는 흐름을

더 선명히 느끼실 수 있어요.


제1화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