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옆 일본소도시 오쓰에서
살면서 수없이 이름을 불렸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하지만 분당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듯
시간당 최다 기록을 측정한다면 분명 지금 이곳,
일본 작은 도시 오쓰의 JUN이라 불리는 식당이리라.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동네에서,
내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아름다운 아이러니
#1. 도모다찌 이야기(3)
오픈 키친 앞의 바테이블 중간에 앉은 나의 옆으로 이곳 주인인 마마짱이 하얀 거품이 흘러내리는 맥주를 가져와 앉았다. 한차례 바쁜 시간을 치러내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인듯했다. 이곳은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라 단골손님들은 서로 친분이 두터워 보였다. 손님들은 마마짱 곁의 낯선 나에게도 다정한 눈빛을 발사해 주었다. 계산을 하러 온 손님에게, 화장실을 가려고 나를 지나쳐가는 손님에게, 아니면 방금 들어온 단골손님에게 마마짱은 쉴 새 없이 곁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여기는 에므제이야~ %^#$%@$" (내가 알아듣을 수 있는 일본어는 내 이름까지였지만 아마도 작년에 한국에서 놀러 왔다가 올해도 우리를 보러 왔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 거지 소통을 못하랴.
마마 짱의 설명이 한 박자 끝날 즈음,
여지없이 손님의 눈빛이 나에게로 향한다.
"곰방와 에므제이"
곰방와~
(마마짱과 손님을 동시에 가리키며 ) 도모다찌? (두 분은 친구예요?)
(마마짱과 나를 동시에 가리키며) 도모다찌! (우리도 친구예요!)
(손님과 나를 가르키며) 도모다찌!!!! (그러니까 우리도 친구가 된 거죠!)
할 줄 아는 말이 도모다찌(친구) 뿐이라 손발이 바빴지만, 한바탕 바보 대화를 하고 나면 까르르 웃음이 퍼졌다.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은 웃음도 넉넉했다.
일본어를 못하는데 번역기를 들이댈 틈도 없이 사람들은 나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에므제이~~~" 내 이름 MJ가 그렇게 귀여운 소리가 나는 줄은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게 안의 거의 모든 손님과 인사를 한 듯하다.
#2. 어른들은 참 이상하지?
마마짱이 다시 가게를 돌보느라 옆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손님이 그 자리에 앉았다.
희끗한 머리의 은퇴한 교장선생님 같은 A와 회사의 부장님 느낌의 B였다.
"에므제이~ 몇 살이에요?"라고 적힌 번역기가 전해졌다.
"시크릿(비밀이에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호구조사는 필수 인가보다.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쉿!이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다음 말이 전해졌다.
"45살 같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B가 끼어들었다
"35살 같은데~"
손가락의 도움으로 에므제이 나이 맞추기가 한창인 지금
서 있는 세상은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참 비슷하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참, 그리고 발견한 재밌는 사실은,
어른들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의 나이를 가늠할 때 본인 나이의 -20을 한다는 걸 알았다.
내게 45살이냐 물었던 교장선생님 느낌의 A는 64세였고
내게 35살이냐 물었던 부장님 스타일의 B는 55살 즈음이었다.
#3. 코토노짱
"에므제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어여쁜 여자 둘이 나를 크게 부른다.
작년에 택시를 잡는 걸 도와달란 부탁에 자기가 데려다주겠다던 눈이 맑은 코토노와
마마 짱의 딸인 스즈호가 콘서트를 보고 돌아와 나를 반겼다.
무계획이었던 나의 여행 루트도 열심히 찾아주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려고 하면 얼른 번역기를 켜서 대화를 도와주던 마음 예쁜 코토노.
1년 만의 조우가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반갑고 친근했다.
물론,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통에....
두 손만 부여잡고 "에므제이......." "코토노....."라고 말한 게 전부지만 말이지.
내가 만약 그림 실력이 있다면, 코토노의 얼굴에서 눈을 가장 정성스레 그리고 싶다.
크고 맑은 눈빛과 웃을 때면 눈꼬리까지 반달이 되는 그 눈을 오래 기억하고 싶으니까.
오늘, 내 이름은 수십 번 불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길이 되는 곳이었다.
도모다찌, 시크릿, 곰방와, 에므제이—
낯선 말들 속에 웃음과 추억이 하나씩 새겨졌다.
그리고 지금,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여행은,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이름 하나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 연재는 여행정보 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갑니다.
한 조각씩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함께 걸어주시면
슬픔이 희미해지고 다정함이 스며드는 흐름을
더 선명히 느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