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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의집 Oct 11. 2018

중요한 일기

2편. 최초의 아이폰

“아이폰 준비하실 수 있어요?”


2010년 5월.

일생일대 선택의 순간.

인생 처음 본 면접에서 이 일을 하려거든

아이폰을 준비하라고 했다.


아이폰이라,

나와 친구들은 평생 얼리어답터의 삶을 살았지만

그 당시 누구도 아이폰을 갖고있진 않았다.

핸드폰 하나에 80만원이 넘는다고????!!!!!!???!!!!!

여전한 당황 속에

아이폰으로 뭘 얼마나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되던 시절이었다. 사진은 이미 디카로 찍고 있고, 음악은 아이팟으로 듣고 있는데... 핸드폰까지... 그것도 100만원 가까이하는???!!!!!!


더구나 대학생에게.

심지어 나에게.


겨우

아이폰을 살수 있냐 없냐

집이 머냐 가깝냐

돈을 얼마를 버냐


어떤 좋아하는 일이나 호기심 앞에

이것들은 ‘따위’였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진짜 해보고 싶다면

기꺼이 내 시간을 투자하는거지!


하지만 당시 나의 인생은

이제 막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접경지역에 놓여있었다.

평생 나의 스폰서가 되어줄 줄 알았던 아빠가

부도를 경험하고 힘들어했으니 U_U

용돈은 물론 등록금도 내가 벌어야하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나는 결국 돈이 필요해 처음으로 사회에 문을 두드렸다.


이왕에 돈을 벌어야한다면 ‘인턴’ 같은 것을 해보는 게 좋겠군! 아니 2명 뽑는 언론고시에 몇만명에 달겨드는게 말이 되? 뭔가 새로운거 없나... 인터넷서비스기획자라니... 궁금한걸? 결국 PD나 에디터나 다 기획자인거잖아?! 회사가 정자역, 집에서 10분거리!!! 짱인데?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인턴 자리.

언론사의 좁디좁은 문앞에 가득 모여있던 친구들은 서비스기획자 따위에 한 눈을 팔지 않았다.

그 점이 나에겐 더욱 매력포인트!


내 인생 첫 면접이었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기분마저도 처음이었는데 그냥 얼얼.. 한것이 아 망했구나... 싶었다.

이런저런 문답을 하다가 면접관이 “좀 산만한 편이죠.” 라고 했으니 물어보나마나........... 산만이라니.... 산만. 면접에서 이보다 더 나쁜 말이 어디있을까?

에라, 아이폰 안사고 좋네!

아이폰을 왜 사오라그래, 사줘도 모자랄 판에?


터벅터벅 이불킥하며 슬슬 걸었는데

20분만에 우리동네.

집은 또 왜이렇게 가까운건지,


이제 마지막 남은 횡단보도 하나.

신호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 쎄- 한 느낌.

폴더폰을 고이 펼쳐 전화를 받았다.



“유나씨.

다음주부터 바로 출근하실 수 있어요?”



오.

됐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산만한 사람을 원했다.

당시의 말로,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

인생 참 별꼴이다.


나는 면접에 대해 배우거나 준비한 적은 없지만 대학시절 내내 ‘나’와 친해지고 점점 더 알아가기 위해 애썼다. 정말 치열하게 그 일에 집중했다. 면접의 질문은 하나같이 그간 내가 노력한 ‘나’에 대한 것이었다. 돌아보면 후회도 되고 아쉽기도 했지만, 뭐랄까... 솔직하기만 하다면 어떤 면접이든 최선이 아닐 순 없었다. 나는 오로지 그것에 집중하며 살고 있었기때문에!


인생의 많은 ‘첫’ 경험이 그렇듯

첫면접은 큰 충격이었고 대단한 응원이었다.

나처럼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어떤 프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니, 아니면 내가 뭣도 모르고 혼자 닦아온 길이 탁월한 준비물이 된걸까?



아이폰을 사면

당장 다음달까지 어떻게 살 수 있을지조차

갑갑했던 상황, 아무 대책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아이폰을 준비해야겠다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아이폰이란 새로운 세상, 거기다 프로들과 함께하는 인턴이란 경험은 당장 눈앞에 물질적 가난이란 새로운 세상을 집어삼킬만한 크고 거대한 가능성임이 분명했다.



교수님께 일을 바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중간/기말 시험만 보러 오면 출석인정을 해주신다 하셨다.


그래, 4학년 1학기는 실기수업!



카카오톡

카카오수다

위지아



긴장하며 보냈던 4개월 인턴 생활동안

내가 운영하고 기획했던 서비스들이다.


정자역 근처 작은 사무실

20명 남짓의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5만명, 10만명. 늘어가는 사용자들


나는 카카오톡의 부화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는 건 맞는데 이게 어디까지 얼마나 퍼질 수 있을지 막내였던 나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들 고생했는데 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연민정도밖에 품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한동안도 아이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어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으며 설명하기 바빴다.

“얘들아 카카오톡이라는 게 있는데, 너네가 아이폰을 다 사잖아? 그럼 우리가 이제 그룹으로 대화를 할 수도 있고 사진같은 걸 바로 보낼 수도 있어! 진짜 신기해! 사진을 보낼 수 있다니까? ㅋㅋ”



카카오를 만든 사람들이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겨우 아이폰을 사는 것으로

터널 입장권을 구매했다.

그 때 카카오는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열심히 땅굴만 파고 있어

일하는 사람들한테 삽하나씩 쥐어줄 힘조차 없었다. 그래서 각자의 삽(=아이폰)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 터널을 들어갔기에

두가지 길을 낼 수 있었는데


하나는,

카카오 이 후 많은 젊은 IT인들이 스톡옵션이나 잭팟에 큰 관심을 가질 때 나는 그것을 쉽게 꿈꾸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카카오톡이 모두의 카카오톡이 되기까지 초기 멤버들이 이런 미래가 있을 줄은 전혀 모른 채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큰 불안과 싸웠는지... 이 정도 보상을 해주면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IT판에 제대로 들어가봐야겠군! 이란 중요한 결심.



모바일이 주는 미래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람들

이 무한의 가능성에

나는 어떤 확실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겨우 아이폰을 산 것 뿐인데...

세상에 이렇게 비싼 아이폰이 또 있을까?


이제는 엄청난 기업이 된 카카오보다도

훨씬 값비싼 최초의 아이폰

나의 iPhone 3gs.


인생을 가르는 대담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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