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선비>를 보며 궁금해진 조선시대 섹시한 사람들
<밤을 걷는 선비>(이하 '밤선비') 만화를 봤다.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밤선비' 재밌다는 소문을 들어도 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드라마가 시작하고 나니 원작이 무척 궁금해졌다. 1화를 시작으로 3시간?에 걸쳐 정주행! 지금 60화까지 나와있는데, 새벽이 돼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60화를 다 봐버렸다.
http://page.kakao.com/home/46295274 (여기서 어느 정도 무료로 볼 수 있다.)
만화를 보면서 '책쾌'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책.쾌. (소리 내어 읽어볼 필요가 있음)
어감이 무척 독특해서 더 생소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밤선비' 여주인공의 역할이 책쾌인데, 여주인공을 보면 볼수록 이게 실존했던 역할인지.. 역사 속에 정말 책쾌들이 있었다면 실제로는 어땠을지.. '책쾌'라는 단어가 말풍선 속에 등장할 때마다 호기심이 깊어졌다.
책쾌는 정말 있었을까?
책쾌는 조선시대에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직업도 시대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하기 마련인데 책쾌가 조선시대에 활약했던 이유는 당시 조선이란 나라가 책에 대해 엄청난 단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식채널e에서 책쾌를 주제로 다뤘던 적이 있었다. 이 짤막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책쾌에 대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민간 서점이 금지되었던 조선시대
: 책은 곧 지식이었고, 지식의 공유를 막았던 조선의 제도
영조, '명기집략' 사건
: 조선 왕실을 비판한 책 '명기집략'
: 당시 모든 책을 불 태우고, '명기집략'을 유통한 책쾌들을 처형
: 이후 더욱 강화된 서적 유통 감시
책을 보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책을 찾았고 단순히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 외에도 책을 유독 아끼는 마음을 가진 이들은 책을 소개하고 판매했다. (나만 감동하는 건가... 아아..) 책쾌의 탄생이 이런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 후, READING IS SEXY라는 이 매거진의 발행자로서, 어떤 의미로는 나도 책쾌가 아닐까? 하는 거룩한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게 참 섹시하다고 느끼는 요즘, 조선시대에도 책을 읽고, 책을 소개하고, 책을 팔던 섹시한 사람들이 있었단 (당연한) 사실을 소개하고 싶어 졌다.
양선은 역모 누명을 쓰고 몰락한 양반가의 딸이다. 집안의 몰락 이후 남장을 하고 책쾌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밤선비'의 양선처럼 당시 실제로 몰락 양반들이 생계를 위해 책쾌로 활동했다고 한다. 책을 잘 아는 사람은 그 시절에도 당연히 지식인으로 대우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양반들에게든 신분이 낮은 백성들에게든 책쾌 양선은 무시당하고, 양선 스스로도 이런 무시에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책쾌는 싼 책을 비싸게 팔아넘기는 속된 장사꾼으로, '명기집략' 사건 후로는 범죄집단으로도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책쾌는 무엇보다 책을 정말 좋아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게 믿는다.) 책을 유통하는 것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밥벌이인데다가, 단순히 고객이 원하는 책을 찾아다가 파는 거래상이 아닌 트렌드에 따라 고객에 따라 읽을만한 책을 추천하는 직업이었다. 책을 잘 알지 않고 그저 수완만으로는 절대 고객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양선은 청나라에 있는 책방골목으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책을 탄압했던 조선인 양선에겐 차마 꿈꿀 수도 없었던 원더랜드일 것이다. 책쾌 양선은 엄청난 양과 레어템이 가득한 서재를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버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부러웠다.
이런 설렘설렘한 양선을 '밤선비' 드라마에서는 이유비가 그려내고 있다.
물론, 원작보다. (흠. 여기까지.)
책쾌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했던 책쾌 조생을 그린 작품!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826680
또 다른 책으로는, 빨간 수염연대기(문학과 지성사),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사계절) 등이 있다.
소장한 책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가슴 깊이 공감하는 말이었다. 나는, 너는, 어떤 책을 읽는 사람인가?
책을 못 보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중국의 신간 서적에서 서학 관련 서적까지, 다양한 책을 구하기 위해 책쾌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이르러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쾌를 원한다. 누군가는 책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읽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