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수많은 의심을 여전히 묻지만,
나의 가장 깊고 진한 친구 세명.
권민지 이빛나라 김다영이 모두 작년에 결혼을 했다.
덕분에 한해동안 세번의 부케를 받았는데 (^^) 부케데뷔무대였던 권민지 결혼식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무릎의 바운스를 튕기더니 이후로 연속 세번이나 능숙하게 잘 받아냄으로 나는 부케계의 한 획을 그었다.
부케받으실 분 나오세요.
사진기사님이 부케받을 친구를 부르면 나는 아주 뻔뻔한 얼굴로 내려가 저 멀리 외야수가 되어 자리를 잡는다. 그럼 관중석의 신부친구들이 '어머~~~~~~~~~~~~~~~~~~~~~' 하는 발그레한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데, 마치 내 귀에 도청장치가 달린 것처럼,
'남자친구 생겼나봐'
'결혼날짜 잡았나봐'
'남자친구 누구야????' 속닥속닥거리는 속마음들이 마구 들린다.
친구들의 기대와 다르게 당시 내인생에 결혼 계획은 없었고, 심지어 남자친구가 없더라도 세개의 부케는 당연히 내 것이 될 작정이었다. (음?) 나는 신부의 제일 친한 친구고, 마침 결혼도 아직 안했으니 내가 부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닌... 쎄에- 한 기운. 내가 가진 당연함들은 또 다른 당연함과 자주 충돌했다. 예를들면 이런 것들ㅡ.
1. 왜 결혼약속을 잡았는데 프로포즈를 또 하는 것인가?
2. 왜 신랑신부는 알지도 모르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축가를 하는 것인가?
3. 왜 부케는 한 사람을 정해서 던지는 것인가?
4. 왜 모두 흰색드레스를 입는걸까?
5. 왜 안경 벗는게 어울리지도 않는 신랑이 결혼식날만 안경을 벗는가?
6. 한번 읽고 버릴 청첩장은 왜 이렇게 한번 읽고 버릴만하게 만드는 것인가?
7. 결혼 준비하느라 안그래도 돈 많이 들텐데 왜 청첩장 준다고 비싼 밥까지 사주는걸까?
8. 왜 신랑신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엄마의 먼 친구 아줌마까지 결혼식에 오는걸까?
9. 왜 다 똑같은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것인가?
10. 왜 결혼식에 올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는 것인가?
11. 왜 남자친구가 있어야 부케를 받는 것일까?
12. 스몰웨딩은 정말 스몰일까?
13. 왜 학생차림이나 똑같은 캐주얼 차림으로 결혼 사진을 찍는가?
...
나의 당연함이 또 다른 당연함과 충돌하는 것을 '의심'이라 정의한다. 평생동안 지긋지긋하게 시달린 결혼에 대한 의심을,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끝나지 않는 물음은 자주 짜증으로 이어졌고, 무엇보다 돈 많이 들고 개성도 상실한 스몰웨딩이 제일제일제일제일제일 짜증났다. 그런 납작한 취향보단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전형적인 결혼식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늙음이란 게 어찌나 큰 복인지, 의심과 질문을 반복하는 사이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결혼을 간접경험하며 결혼에 대한 마음이 말랑말랑단단하게 다져졌다. 어떤어떤 메이크업, 어떤어떤 드레스, 어떤어떤 사진스튜디오를 줄줄이 꿰는 친구들의 낯선 모습, 양가 어른들의 취향에 모든 것을 맞춘 채 결혼식을 아주 수동적으로 해 치워버린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였던) 친구, 축제처럼 춤추고 놀다 결국 이태원 클럽까지 결혼식을 이어간 (꽤 착하고 평범했던) 친구, 결혼사진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는 결혼식에는 아무 관심없는 (한결같이 사진을 좋아한) 친구.
결혼에 대한 의심은 여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유가 생겼다.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었는데! 그건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우리가 하는 결혼준비의 대부분은 결혼'식'준비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 발견은 짜증으로 변해가던 의심의 싹을 잘라버렸고, 천태만상 결혼식을 더이상 답답해 하지 않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결혼식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지만 결국 이만한 사람이 어디있을까, 이러다 결혼하겠지 싶기도 했다. 딸의 연애에는 애써 무관심하던 아빠가 어느 날 물었다. "진짜 사랑해?"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치사하게 무방비상태인 진심을 공격하다니!
그 순간. 순식간에 우리 사랑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아. 이미 저 멀리 떠나갔구나...
아빠는 그 날 딸에게 진짜 사랑해서 결혼하라고 당부했다.
그래도 힘든 것이 결혼이라며.
나는 사랑이 깊어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마음에 결혼을 결심 할 것이다. (과연..)
결혼준비는 결혼이란 친구가 갖고있는 사명을 이룰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는 것으로 대신할 작정이다. 결혼의 사명은 우리가 결혼을 결심하고 만들어가는 한 시절을 오래오래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먼 훗날 우리가 결혼을 기억할 때 결혼'식'을 위해 선택했던 수많은 소비와 협상의 순간을 애써 떠올리지 말고 (평균 2년을 채 못가는 결혼식에 대한 기억)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한 우리의 생생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다. 우리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어떤 대화를 하는지, 화가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서로의 시간을 어떻게 함께 보내는지, 어떤 꿈을 꿔 왔고 앞으로 어떤 꿈을 꾸는지, 우리들의 가치관과 교육관의 차이는 어떤지 어떻게 하나로 맞춰갈지. 많은 말이 필요하고 또 많은 침묵이 필요한 중요한 과정이다.
'결혼'이라는 긴 여정 속에 '결혼식'이 얼마나 안 중요한지를 깨달아 참 다행이다. 이 보물과 같은 발견에 힘입어 이제 결혼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린 친구들, 결혼보다 결혼'식'에 방점이 찍혀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식의 순간 뿐 아니라 그로써 시작되는 우리들의 세계를 더욱 기대하자고 온몸으로 말해주고 싶다.
[TIP] 우리는 왜, 결혼을 준비하는데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일까?
-원인-
결혼은 사랑해서 하고
사랑은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데
믿음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안그래도 약하고 불안한 존재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쉽지 않다.
보이는 것을 빌려 불안을 거두고 싶어한다.
-증상-
결혼식에 전력투구하며 결혼을 준비한다.
-특효약-
보이지 않는 믿음의 힘이 결혼 본질과의 거리를 결정함으로, 보이는 것을 빌리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훈련을 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