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淨化

참아온 마음이 몸으로 말할 때

by 고요한걸


정화(淨化)

지금,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답답하고 마음이 가라앉아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정화(淨化)가 필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정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느슨해진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상태, 순수함과 솔직함이 남아 있는 감각. 정화는 늘 고요하고 동시에 정직한 단어다.


우리는 지금, 정화가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과도한 정보와 감정,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마음은 쌓이고 몸은 기억한다. 그러나 정화된 상태로 산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너무 정화된 몸과 마음은 오히려 이 시대를 살아내기 어렵게 만든다. 모든 자극에 예민해지고 현실의 속도에 쉽게 상처받는다. 마치 면역이 과하게 낮아진 상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화를 포기할 수 없다. 정화는 도피가 아니라 조율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탁해지지 않도록, 그러나 완전히 비워내지도 않도록 주기적으로 감정을 정화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몸과 마음은 다시 균형을 찾고, 우리가 끝내 도달하고자 하는 웰니스라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정화란 더 맑아지기 위해 세상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나를 한 번 정돈하는 일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성실함을 강조하셨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그 한마디는 마치 내 성장의 기둥처럼 늘 곁에 있었다. 인사와 책임,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 부모님은 자유를 주시면서도 그 자유가 방종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엄격함을 덧붙이셨다.

나는 그 말씀들을 따라 살았다. 무엇을 하든 성실해야 했고, 인사를 빠뜨려서는 안 됐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했다. 그 덕분에 현실 속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을 배웠지만, 그 단단함은 어느 순간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가르침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은 내 안에 뿌리내렸고,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은 나를 끊임없이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도전하기 전에 수없이 망설였고, 머릿속에서 수백 번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며 발걸음을 늦추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역설적으로 반대의 성향이 생겨났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일단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 커졌다. 실수도 결국 사람의 몫이라며, 실패 앞에서 관대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병을 앓고 난 후에는 실수에 대한 압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살아있다는 것,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귀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부모님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러나 대화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원래 인생은 그런 거다.” 그 말은 나를 강하게 키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그것은 곧 “참아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억울해도, 슬퍼도, 속상해도 입을 다물고 삼키는 법만 배웠다. 고민이 있어도 티를 내지 않았고, 불안하고 슬플수록 더 웃었으며,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해졌다. 긍정 회로를 돌린다고 믿었지만, 실은 내 마음은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 태양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밝게 웃을수록, 그 이면의 마음은 조용히 더 힘들어졌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다들 이렇게 참으며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을 풀고 있었고, 나는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자니 괜히 짐이 될까 봐, 나는 매번 “괜찮다”는 표정으로 버텼다. 물론 그 엄격함 덕분에 예의가 몸에 배었고, 세상 풍파에 맞설 굳은살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을 넘기 시작하면, 나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풀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무능력하고 나약한 일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억압이었고, 나를 점점 더 외롭게 만드는 굴레였다.

결국 문제는 겹겹이 쌓여 병으로 이어졌다. 몸은 더 이상 참지 못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에 묶여 있었다. 큰 병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숨겨둔 감정들이 터져 나오고, 울음이 쏟아지고, 말이 되지 않던 마음들이 흘러나오면서, 표현의 중요함을 처음으로 배웠다.

그 이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조용히 삼키던 말을 이제는 의도적으로라도 꺼내려고 한다. 억눌러두었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낼수록, 오히려 내가 더 단단해지는 걸 발견했다. 강인함은 참는 데 있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 그 자리에 진짜 강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말이 많아졌다. 예전보다 훨씬 더 내 마음을 나누려 한다. 서툴게, 때로는 과하게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연습이라고 받아들인다. 감정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고, 그 과정이 내 마음의 숨통을 틔워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의 엄격함 덕분에 나는 오히려 자유를 찾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자유의 통로는 그림이었다. 아주 흰 도화지를 펼쳐두고 물감을 올리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색을 칠하면 칠할수록 마음 어딘가에서 행복감이 피어올랐고, 조용한 자유가 내 안에 스며들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는 것이 피해가 될까 주저할 때, 말들을 어디에도 둘 수 없을 때, 나는 그것을 도화지 위로 녹여냈다. 그러면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그림은 나의 언어가 되었다. 자유와 행복을 위해 그림이라는 수단을 쓰다 보니, 나는 점점 더 예쁜 색을 찾게 되었다. 내 기분을 조용히 위로해 주는 보랏빛, 마음을 환기시키는 분홍빛, 차분한 푸른 회색, 그리고 수채화의 번짐이 남긴 경계들. 색의 번짐은 내가 통제하지 못했던 내 삶을 닮아 있었고, 그 예측 불가함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 이렇게 번져도 괜찮다.” 도화지는 내게 그렇게 속삭였다.

언어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색과 질감과 번짐으로 드러낼 때, 나조차 몰랐던 내 마음이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은 내게 숨 쉴 구멍이자, 또 다른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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