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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미아 Nov 15. 2024

어릴 적 이야기

-해동 아파트 A동 207호

내가 일곱 살 때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그전까지 살던 집은 한마디로 단칸방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아빠가 한쪽 끝에서 자고 엄마, 막내 남동생, 둘째 여동생 그리고 내가 제일 끝에서 잤었다. 그랬던 우리가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해동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해동 아파트는 서울에서 사는 분들이 여름 별장처럼 사용하던 용도로 지어졌던 것으로 처음에 이사 갔을 때만 해도 여름에 휴가를 오는 분들이 계셨던 것 같다. 


아파트는 A동과 B동 두 개로 나뉘어있었고 두 개의 층이 있었다. 1층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어서 2층과 3층에 집들이 있었던 형태. 아파트 앞과 뒤로 제법 큰 잔디가 있었고 그 잔디밭에서 이 동네의 아이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더랬다. 여름 별장 용도로 지어졌던 거라 아파트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게이트도 있었고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도 계셨다. 


방이 두 개나 있어서 우리 삼 남매는 부모님과 따로 방을 사용했다. 거실도 너무 넒어서 생일잔치에 친구들 열명을 초대해도 넉넉했다. 또래 친구들도 많아서 우리는 해지는 줄 모르고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모든 놀이들을 하고 다녔고 이웃의 집에도 스스럼없이 가서 놀다 오고 저녁을 먹고 오곤 했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을 봤을 때 예전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참 마음이 따뜻해졌더랬다. 

우리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끼리도 많이 친하셔서 온 동네가 늘 북적북적했더랬다. 


나는 거기서 내 인생 최고의 친구를 만났다. 당시에는 활발하고 애살쟁이였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조용하고 친절했다. 나는 마루 인형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도 나중에 내 여동생이 미용실 놀이한다고 머리카락을 댕강 잘라버렸다) 내 친구는 서랍장을 열면 거기에 마루 인형이 서너 개, 드레스도 수십 벌, 침대도 있고 화장대도 있었다. 친구집에 가서 매일 인형 옷을 입혀 보고 인형 놀이를 하다가 친구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저녁을 먹고 집에 오고는 했다. 그 친구와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같이 다녔고 노는 그룹이 달라 잠시 사이가 소원했던 중고등학교 때를 제외하면 친구는 나에게 베프이다. 


교회에 다니던 친구가 유년 주일 학교 행사에 나를 초대해 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불신자 가정에서 자란 나는 처음 갔던 교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율동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동아리로 선교 단체 가입을 먼저 한 친구가 나에게 소개를 해줘서 가입을 했다. 그 선교 단체가 국제 선교 단체여서 일본에 가서 훈련도 받고 몇 년 후 남아공에 가서 훈련을 또 받고 또 몇 년 후에 하와이 코나 열방 대학에 가서 훈련을 받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의 초대 하나가 그 작은 시작이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들었다.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다른 시간 혹은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했겠지만 내가 과연 그 선교 단체에 가입을 하고 훈련을 받고 열방을 섬기고 남편을 만났던 것은 지금의 모습과는 어쩌면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해동 아파트 A동 207호는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기억이다. 그리고 내게는 지금의 내가 있게끔 한 아주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만났고 그 덕분에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리고 비바람 치는 날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흐리고 비바람 치는 날도 내게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가르침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는다. 결국은 나의 태도가 나를 만들어 낸다는 당연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번 주말에 <응답하라 1988>이나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넘어서 내 소중한 오랜 친구에게 전화 한 통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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