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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데리야끼 Feb 05. 2024

한국에서 누렸던 여유는 가짜였구나 !

워라밸, 혼자 있는 시간 따윈 없었던 내가 여유를 즐긴 방법

한국에서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기 바빴다. 쏟아지는 과제와 할 일들, 그리고 잠깐의 여유나 쉼이 생길 때면 기력이 없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했다. 인스타 스토리를 휙휙 넘기고,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보는 것이 내 휴식의 전부였다. 짧고 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유럽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일단 친구들과 시차가 있으니 연락 다운 연락을 하기 힘들었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붙들고 있자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한국에 있었다면 대학생이니 대외활동, 영어 공부처럼 할 게 산더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책 하나도 들고 오지 못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방대한 여유를 즐길 수밖에! 먼저는 학교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왕창 빌려보았다.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에 문학은 멀리했었는데 달러구트 꿈 백화점부터 시작해 소설을 읽었다. 아, 타국살이의 외로움을 떨쳐주는 또 다른 세상 속 이야기란. 1분 남짓한 토막의 영상만을 보다가 긴 호흡으로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니 꿈꾸고 상상함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가끔 바람을 쐬러 도서관에 가면 보이는 친구들은 저마다 두꺼운 책 하나씩 들고 와 하염없이 책을 읽곤 했다. 술 마시고 춤추던 친구들의 책 읽은 모습을 보니 얼마나 흥미롭던지! 알고 보니 기차를 탈 때도 가족들과 만날 때도 책을 자주 읽곤 한다는 모습이 참 귀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도전은 운동이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숨쉬기 운동, 혹은 기분 내킬 때 러닝 정도가 전부였다. 친구가 70여 종의 운동을 배울 수 있는 스포츠 클럽이 있으니 함께 하자고 권유해 왔다. 중학교 때부터 체육 시간 이외엔 움직이지 않았던 내게 썩 내키는 제안은 아니었지만.. 같이 하자니 등록하였다. 클럽 일정에 따라 복싱, 요가, 필라테스, 스텝퍼, 배드민턴 같은 클래스에 열심히 나갔다. 처음 해보는 운동에 머쓱함이 밀려왔지만 “못하면 뭐 어때?”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은 잘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 운동을 즐기게 해 주었다. 고독, 외로움, 슬픔 따위의 감정이 몰려올 때면 곧장 클럽으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러닝머신을 뛰고 스포츠 클래스에 들어가면 나의 흘린 땀이 눈물을 희석시켜주곤 했다. 내 인생 가장 큰 시련의 순간들을 운동으로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니 뛰어난 몸매와 운동신경이 아니더라도 구슬땀 흘려가며 가꾸어 나가는 건강의 맛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은 사람 구경을 하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인스타그램의 등장 이후 수없이 내 일상을 그곳에 보고하곤 했다. 유럽 교환학생의 목표는? 내 일상을 전시하지 말 것. SNS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저 집 앞 공원을 나가 산책도 해보고, 잔디에 앉아 무턱대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배드민턴을 치러 나온 남매들, 브라이덜 샤워를 하러 온 신부와 친구들, 돗자리 펴놓고 보드게임이 한창인 대학생들부터 아이 손을 잡고 바람 쐬러 나온 가족들까지.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풍족하게 즐기고 있는 이들이 덜컥 부럽게 느껴졌다.


아, 나는 그동안 주말에 무얼 하고 지냈는가. 일상에 지쳐 자거나 휴대폰 하기 바빴고, 그마저도 아니면 친구 손에 이끌려 카공이나 맛집 찾아다니는 게 전부였다. 자기 계발의 차원이 아닌, 진정으로 도심 속 자연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늘 하루를 만끽하는 이들의 모습이 퍽 예뻐 보였다. 한국이었다면 여러 가지 핑계로 우선순위에 밀려났을 그 원초적인 것들의 미학을 넘치는 시간 속에 처음 경험해 보니 ‘행복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아, 행복하다. 남이 아닌 오롯이 내가 채워가는 지식과 건강과 삶의 풍요와 배움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로부터 만들 수 있는 행복을 배우게 하였다. 행복하다는 말 한 번 뱉어본 적 없는 내 입에서 “행복”이 나오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한때 왜 나 혼자만.. 이곳에 왔을까? 에 대한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던 적이 있다. 그러나 행복을 배웠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나의 유럽 생활은 성공적이겠구나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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