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대면

by 김규완

신이 존재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마주해 보았습니다.

재미난 관점의 변화가 하나 있더군요.

그것도 아주 근본적인 변화가요.

관련된 개인적 일화를 하나 짧게 소개해 드린 후,

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볼게요.


저는 유화를 즐겨 그립니다.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을 들면

마음이 조금씩 설레어 오죠.

아주 기대되거든요,

그 네모난 공백 안에서 벌어질 무궁무진한 일들이.

가령 그곳에선 제가 노란색 물감을 칠한 붓을 오른쪽으로 그으면, 곧 노오란 가로줄이 생깁니다.

또 분홍색을 물들인 붓을 아래로 저으면,

분홍의 세로줄이 나타나고요.


그래서 세상에 어떤 절대자가 있다고 믿기 전에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이 사각의 공간 안에서만큼은, 내가 거의 신이 아닐까?

내 손짓 하나로 빛과 어둠이 나뉘고,

하늘과 땅이 구분되며,

해와 달과 별이 떠오르는 그곳에서는,

내가 곧 전능한 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우쭐했었습니다.

한 작가가 남긴 문장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말이죠.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 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라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김영하(1968~)


깜짝 놀랐습니다.

제게 주어진 이 권능한 힘이, 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대신 누군가가 잠시,

제게 문을 열어준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커다란 능력을 허용해 줄 수 있는 존재, 그 존재가 마침 신이면 충분히 가능하리다고 싶었습니다.

저는 신을 믿으니까요.


The true work of art is but a shadow

of the divine perfection.

참된 예술이란 신의 완벽함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Michelangelo(1475~1564)


나는 신이 내게 허락한 만큼,

그 정도까지만 누릴 수 있다라….

그 경험 이후로 다시 일상을 마주하니,

흥미로운 점이 하나 새롭게 보이던걸요.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관점에 대한 것이었죠.


그 첫 사례는 이러했어요.

아주 높은 곳에 올라서서 먼 곳을 바라보면,

저는 마음이 벅차오르면서도 평온해짐을 느꼈습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공간에서, 탁 트인 시야로,

아득한 지평선을 바라보면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든 거예요.

왜 그럴까? 왜 나는 멀리 보면 쾌할까?


사람들은 그 근거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죠.

트인 경치가 생존 경쟁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진화적 이유,

혹은 이런 경험에의 노출이 인간의 호기심과 탐험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인지적 이유,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에 인간 내면의 예술적 감각이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미학적인 이유까지.

그래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신이 존재하고 나니,

이를 또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에요.

말하자면 신적인 관점이라 할까요,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이죠.

시야가 그렇게 더 멀리, 끝없이 확장되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존재일까?


다른 사례들도 곧 뒤따랐죠.


저는 열심히 노력하여 더 많이, 더 넓게 알고자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이든 아는 존재는 누구인가?


저는 주변 관계, 제가 속한 조직, 그리고 사회에서도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모든 일에 대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저는 제게 흠이나 모자람이 없도록 스스로를 계속 포장하고, 채우더군요.

그렇게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충만한 존재는 누구인가?


참 모르겠지만, 저는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 자체로,

온전히 선한 존재는 누구인가?


그리고 저는 일찍이 눈을 감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영원하게,

무한토록 존재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신을 믿는 삶,

그 안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적인 특성을 이유로 설명할 수가 있었어요.

각 기쁨의 연장선, 그 끝에 수렴되는

하나의 원점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것은 마치 희미한 몇 빛줄기들을 보고서, 그 근원이 되는 별을 하나 떠올려 보는 것과도 같다고나 할까요.


Faith is the bird that feels the light

when the dawn is still dark.

믿음이란 새벽이 아직 어둡더라도

빛을 느끼는 새와 같습니다.

-Rabindranath Tagore(1861~1941)


나의 즐거움,

그것을 신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 것입니다.

바로 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고 말이에요.


Rejoice in the Lord always.

항상 신 안에서 기뻐하라.

-Paul the Apostle(5~64)


아주 설렜습니다. 흥미롭잖아요,

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니.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바로 그것이, 제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For the soul to be well, it needs to be with God.

영혼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신과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John Ortberg(1957~)


큰 실마리를 손에 쥔 기분인걸요.


하지만 조금 더 면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신에게 가까워지려면, 먼저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말 잘 알아야 할 테니까 말이에요.

아직 그 존재에 대해 의문스러운 것들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래도 지금으로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잖아요.

한번 다가가 보자고요,

신에게 말이에요.


The mystery of human existence lies not in just staying alive,

but in finding something to live for.

인간 존재의 신비는 단지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에 있습니다.

-Fyodor Dostoevsky(1821~1881)


그럼,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에겐 무엇이 기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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