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대상

by 김규완

나의 가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나누어 주는 것,

이제는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에요.

나눈다는데, 누구에게요?


신은 모든 존재를 무한하게 사랑하겠지만,

유한한 저는 슬프게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인간이니까요.

아마 저는 최대로 노력하여도, 아주 잠시 동안,

극히 일부에게, 조금의 사랑만을 베풀 수 있을 테죠.


저는 이럴수록 제 사랑의 대상이 마땅히 더 낮은 곳,

어두운 곳, 추운 곳에 소외되어있는 존재들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당연한 귀결이었어요.

만일 조금의 물을 나누어줄 수 있다면

물동이를 여러 개 차고 있는 자보다는

목마름에 오래도록 고통받고 있는 자를

먼저 신경 쓰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항상 범주를 나누어 세상을 이해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는 분명 더 소외된 쪽에의 존재들이 있을 것이리라 짐작이 되었거든요.


It's all right to tell a man to lift himself

by his own bootstraps, but it is cruel jest to say

to a bootless man that he ought to lift himself

by his own bootstraps.

신발 끈을 꽉 매고 스스로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신발조차 없는 사람에게 신발 끈을 꽉 매고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은 잔혹한 농담일 뿐입니다.

-Martin Luther King Jr.(1929~1968)


그래서 이제는 그런 소수의 그룹이 누구인지를

알아봐야 할 차례이겠다 싶었어요.

바로 그 존재들이, 사랑이 먼저 가 닿아야 할

대상일 테니 말이에요.


그리고 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더군요.

다시 보니 한눈에 보였거든요.

그들이 힘없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모습이 말이에요.

제가 본 것들을 말씀드릴 테니,

당신도 한번 직접 판단해 보세요.

그들이 진정으로 이제껏 소외되어 왔었는지를 말이죠.


자, A그룹과 B그룹이 있습니다.

두 그룹의 차이는 어떤 선천적인 특성이 다르다는 것 하나밖에 없어요.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A그룹의 존재들은

오랜 역사의 시간 동안 배제와 차별의 고통을

겪어와야 했습니다.

그들은 수 세기가 넘도록 B그룹에 의해 소유물처럼

취급되면서, 열등하고, 게으르며 나약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동등하게 시민의 권리를 누리는 일은 고사하고,

시대별로 특정한 사회적 생활방식을 강요받으면서

말이에요

A그룹은 그들을 억압하는 관습에 저항할 때면,

어김없이 여러 형태의 폭력을 마주해야 했죠.


그럼에도 그들은 높은 비용을 치르며 목소리를 높여 왔고, 이에 비교적 최근이 되어서야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그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지는 이제야 백 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까요.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B그룹과 실질적으로

대등한 권력관계를 회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적인 사례로, 그들은 비슷한 가치의 일을 해도

B그룹에 비해 더 적은 보상을 받고 있거든요.

또 그들은 사회적으로 더 높게 진출하기 위해서도,

더욱 엄격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절반인 A그룹이,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여러 원로그룹에 채 반도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 허다하니 말이에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기에,

그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죠.


당신이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A그룹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이 되나요?


All, everything that I understand,

I understand only because I love.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Leo Tolstoy(1828~1910)


다른 사례를 이야기해 볼게요.


이번에도 다른 어떤 특성이,

두 그룹 A′와 B′를 나눕니다.

A′그룹의 존재들 또한, 현대 이전 대부분의 시기에

가혹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보내왔어요.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들판이나 낭떠러지에

공공연하게 유기되었죠.

그들이 가진 어떤 특성이 전생의 죄악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이 만연했었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그들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기 일쑤였어요.

그저 불완전한 존재, 열등한 존재, 비정상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치료의 대상, 또는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인정받는

일이 아주 드물었으리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죠.


이제야 50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들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국제적인 합의에 이른 것이 말이에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비로소 그들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도 그들의 권리가 충분하게 존중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A′그룹에게는 일상의 삶조차 여전히 고되고 어려운

과제의 연속이니 말이에요.

가령 어떤 나라에서는 B′그룹이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정도가, 아직도 그들의 목숨을

몇 명이라도 잃게 할 수 있는 혹독한 과업이거든요.


그들의 바람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에요.

이에 A′그룹은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나날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B′그룹에 비해 몇 배로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죠.


당신이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그들이 마땅하게,

사랑의 우선적 대상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The rights of one are as sacred as the rights

of a million.

한 사람의 권리도 백만 명의 권리만큼 소중합니다.

-Eugene Victor Debs(1855~1926)


혹은 그저 당신이 A′그룹이 아니기를, 그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신가요?


사례를 하나만 더 들어 볼게요.


여기 또 다른 그룹, A°와 B°가 있습니다.

이들 역시 한 가지 점을 제외하고는,

서로 큰 차이가 없어요.

모두가 숨 쉬고, 생각하며, 사랑합니다.

때때로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며, 두려워하기도, 혹은 분노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 일어난 몇몇 우연에

의해, 두 그룹의 권력관계 또한 한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졌습니다.

B°그룹이 그들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탐구하여,

A°그룹을 하등한 존재로 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A°그룹의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철저하게,

B°그룹을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고 있어요.

그들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태어나 본래보다

훨씬 짧은 일생을 보내며, B°그룹이 원하는 모든 것을 건네어 줍니다.

그것은 그들의 살점일 수도, 특정한 조건에 대한

반응일 수도, 혹은 그저 일말의 재미일 수도 있죠.

‘일방적인 착취’라는 표현이, 아마 여기에보다

더 적절하게 사용되기는 어려울 것이에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A°그룹이 직접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리라고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B°그룹과의 의사소통이 다소 어렵거든요.

그들은 사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심지어

서로 모여 한목소리를 낼 능력조차 갖추고 있지 않아요


그럼에도 세상에 그들의 권리가 점차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관련된 공감대가 활발히 형성되기 시작한 지는 이제야 약 30년 정도가 흘렀어요.

B°그룹에서의 반성적 성찰로 인해서 말이죠.

허나 그들의 지위가 전반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랜 기간,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는 짐작조차도 어렵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말을 못 하니까요.

지금도 그들 일부는 영문도 모른 채 좁은 철창에 갇혀,

가쁜 숨을 내쉬고 있겠죠.


당신이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그들이 처한 상황이 보이시나요?

혹은 아직도 보이지 않으시나요?


The greatness of a nation and its

moral progress can be judged

by the way its animals are treated.

한 국가의 훌륭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Mahatma Gandhi(1869~1948)


만일 위 세 경우의 A, B그룹을 나누는 기준이,

그저 쌍커풀의 유무 정도라면 어떨 것 같나요?

혹은 태어난 일자가 홀수, 짝수임에 따른 것이라면요?

그때도 지금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가요?


...


사랑을 알기 전에는,

A그룹의 존재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정신없이 욕망의 성취라는 돌덩이를 쌓아 올리는 중에,

그들이 보일 겨를이 있을까요.

그저 나의, 또는 내가 속한 그룹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만 신경 쓰면 그만일 테니 말이죠.

내가 주류 그룹에 속해있으면 내 밥그릇이 커서

다행이라며 좋다고 기뻐하면 되고,

비주류의 그룹에 속해있으면 그와 관련된 분야에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면 될 테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밥그릇이 아무리 커도, 무의미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빛나는 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두고 바라만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소외된 자가 마땅히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여성과 장애인, 동물을 포함한

다양한 범주의 소수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어려움에 외면이 아닌 대면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The test of a civilization is in the way

that it cares for its helpless members.

문명의 진가는 그것이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을

어떻게 보살피는지에 나타납니다.

-Pearl Sydenstricker Buck(1892~1973)


그리고 이제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 곧 내 가치이자, 기쁨임을 말입니다.


The unselfish effort to bring cheer to others will be the beginning of a happier life for ourselves.

다른 존재에 기쁨을 주기 위한 이타적 노력은,

우리 자신에게 더 행복한 삶의 시작이 됩니다.

-Helen Keller(1880~1968)


주저함은 없어요.

앞으로, 더 앞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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