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전환 / 4-1 수준

by 김규완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저는, 이전에 없던 믿음이 있죠.

저 멀리에 밝게 빛나는 북극성이 있다는 믿음.

갖은 욕망의 성취가 잠시의 만족감을 허락할지언정,

참된 삶의 실현에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믿음.

다양한 기준에 의해 나누어지는 다수자와 소수자,

그 범주 사이의 격차 완화에 기여하는 일이

유의미한 일이라는 믿음.


이에 개인적, 사회문화적인 기여라는

구체적인 대답까지도 내릴 수 있었잖아요.

저는 그렇게 고이 빚어낸 믿음들을 디딤돌 삼아,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이루고자

하루씩 나아가고자 하였죠.

결국은 뛰어들어야,

무슨 일이라도 실제로 일어날 테니까 말이에요.


You can't cross the sea merely by standing and staring at the water.

물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습니다.

-Rabindranath Tagore(1861~1941)


의미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윽고, 마음속에는 그다음의 질문이

뒤이어 따라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것은 바로 제 기여의 영향, 그 수준에 대한 것이었죠.

마치 화살표의 방향과 이유가 분명하게 나왔으니.

이제는 그 크기가 고민되었던 것이에요.


확신으로 뛰어든 바다, 그 깊이는 아득했고,

그 끝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거든요.

다수자와 소수자의 범주는 다양했고,

그 격차는 만만치 않았으며, 저의 기여는 한없이

일시적이고도 또한 미미해 보였습니다.

이런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얼핏 보아도

제가 하는 것보다는 아주, 훨씬 더 큰 수준의 기여가

필요해 보였거든요.


그렇잖아요, 만일 제가 힘차게 뛰어들었는데도,

거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면 어떡하죠?

혹 저는 제 기여에 관하여, 스스로 최선을 다하였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사랑의 실천이 대양을 헤엄쳐 건너는 것과 같은 일이라면, 앞으로는 정말 조금만 나아갔더라도 그저

물장구를 크게 쳤음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요?


Be faithful in small things because it is in them

that your strength lies.

작은 일에 충실하세요,

그 안에 당신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Teresa of Calcutta(1910~1997)


작은 일에 충실히 하라는 말, 응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다 실질적이고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 무엇일지, 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아니할 수 없었어요.

그것이 더욱 의미가 큰 실천일 테니까 말이죠.


만일 사랑의 실천이 사막 한가운데에 호수를 이루는 일이라면, 아주 고생하여 몇 방울씩의 물을 손바닥으로 옮기는 방법보다는 양동이로라도 퍼다 나르는 방법이 분명히 더 크게 기여가 되는 것이잖아요.

또는 사랑의 실천이 마치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면 그저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라며

목적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 가는 것보다,

기차를 타고 앉아서 가는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의미 있는 실천인 것처럼 말이에요.


The person who is trustworthy

in very small matters is also trustworthy

in great ones; and the person who is dishonest

in very small matters is also dishonest

in great ones.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합니다.

-Luke the Evangelist(1?~84?)


그래요, 지금 작은 일에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작은 것뿐이지만 말이에요.

만일 사랑의 실천이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면, 저는 혹 이런 작은 일들은 마치

기우제를 올리며 단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같은 바는 아닌지 하는 우려나마 들었습니다.

사실은 아주 조금도 아닌, 실로 아무런 영향이 없는

노력인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唯天下至誠 爲能化

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자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子思 자사(B.C.483~B.C.402)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일이 오래도록 모이고 모인다면, 그 끝에는 어떠한 변화를 아주 조금씩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우리 공동체가 이미 경험한,

역사 속의 여러 선례를 통해서 말이죠.

허나 이는 제가 실천할 수 있는 더 큰 일에 대한 고민을 그만둘 이유는 되지 못하잖아요.

작은 일을 계속 지속하면서도 말이에요.

제 삶에 참된 의미를 더욱 충분하게 부여해 줄 수 있는,

더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가장 큰 실천.

그런 것이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이죠?


Small deeds done are better than

great deeds planned.

작은 실천이 계획된 큰일보다 낫습니다.

-Peter Marshall(1926~)


당연해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실천이 더 낫겠죠.

하지만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인간과 동물 등의 다수자와 소수자 이슈는 하나하나

참으로 거대한 태산과도 같이 느껴지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내가 더욱 분명하고도 실질적인 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는 일, 저는 그러한 일이 있을지,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를 정말 찾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최선이 아니라,

실제로의 큰 변화이니 말이죠.

사랑은 자기만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대상에게 구체적으로 경험되어서만이

비로소 실천되는 것이니까요.

마치 신이, 조용하게 몸소 이 세상을 창조해 냄으로써

제게 먼저 보여주었듯이 말입니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이른바 그 뜻을 진실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曾子 증자(B.C.505~B.C.435)


순수한 마음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 이에 대한 고찰이

제 삶을 선명한 확신으로 살도록 하기에 필요한

마지막의 조각이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냉정히 보아, 저의 나눔과 베풂은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키죠?

내가 최대한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데요?

그렇게 하면 뭐가 얼마나 바뀌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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