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한계

by 김규완

사랑의 실천, 이에 대한 가장 큰 일.

참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에 매 순간 또한 그러했죠.

분명 이와도 관련된 기록이 있을 것이리라 생각했어요.

갈증을 지닌 채, 그것을 일으키는 물음에 대해

다시금 천천히 곱씹어 보았습니다.


다수자와 소수자의 구도, 이는 다양한 규모에서

여러 범주에 의해 나타났으며, 또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도 계속 변화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미와 추, 귀와 천, 빛과 어둠, 위와 아래, 중심과 주변,

우등과 열등, 문명과 야만, 정상과 비정상,

기득권과 비기득권….

그래서 이에 관해 무엇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정하는 일이 더욱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세상에 어떤 범주들에서의 격차가 도드라지게

드러나 있는지를 더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죠.

곧 몇몇 범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개발도상국 다수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지배 속에,

경제적 착취와 수탈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로 인한 국가 간의 발전 격차는, 대부분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이는 무역, 금융, 국제기구 등 여러 방면에서의

질서가 다시금 선진국이 중심이 되게끔 형성되도록

하여, 문제를 더욱이 어렵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학력자는 보다 임금이 낮은 비숙련 노동에 임하며,

실업에 처할 여지는 더 높습니다.

이는 곧 개인과 가구의 자산과 건강 수준의 차이로까지 이어지며, 또한 자녀의 교육 기회에까지도

다시 영향을 미치고 있었죠.

이러한 사회환경 속에서, 교육 불평등은 세대를

거듭하며 계속 대물림되는 면이 작지 않게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는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인 차별과 배제의 역경을 겪고 있어요.

그들은 교육, 근로, 주거,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기본적인 수준의 법적 권리조차도

온전히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들에 관해 오래도록 쌓인 편견은 혐오로,

다시 나날이 짙어진 혐오는

증오 범죄로 이어지기까지도 하고 있었죠.

그들의 외침은, 그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하여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 전부인데도 말이에요.


이주민 또한, 내지인 공동체에 의해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는 낯선 문화, 언어, 관습 등으로 인하여

유달리 구별된 그들의 정체성이

노동시장에서의 취약한 위치,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불리한 대우로 이어지기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정치적인 참여의 기회가 제한적이기에,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곧잘 밀려나고

공공연하게 ‘내지인 사회’의 유지를 위한

도구적인 존재로 비치기까지도 하더군요.


아동과 노인은 각각 신체적인 미숙과 노화,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 의존성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보호와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위치에서 벗어난 그들 역시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소 주변화되어 있기에,

그들의 목소리 또한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가난한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거예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교육적, 의료적, 법적…. 가히 일상의 모든 방면에서

커다란 제약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여성과 장애인,

동물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장에서 둘러보았었죠.

이후로는 서양과 동양, 백인과 유색인 등의

몇몇 더 큰 범주들이 더 보였고요.


정말 하나하나, 말 그대로 거대한 태산과도 같이

느껴지는 문제들이잖아요.

첩첩한 태산을 바라보며 깊은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한 거짓말일 터였습니다.

제가 하려는 일은 마치 밀려오는 쓰나미를 막아보고자,

해안가를 따라 큼직한 조개껍데기 몇 개를

꼿꼿하게 세워두려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혹은 거센 돌풍을 멈추고자,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그저 두 팔을 힘껏 펼쳐 들어 보이려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라고도 표현드릴까요.

실질적인 큰 변화를 이루기는커녕,

저의 나눔과 베풂의 결과로는 어떠한 아주 작은 의미를

지니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다시금 저를 바라보니, 저는 소수자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적 다수자 중의 다수자인 거예요.

선진국의 비성소수자인 고학력 내지인 청년,

가난하지 않은 비장애인의 남성 인간.


여지없는 사회적 다수자인 내가 이 문제에

이렇도록 막막함과 무력함을 느낀다면,

그 소수 당사자들이 느낄 바는 얼마나 깊게 그러할까?

내가 먹고사는 문제와는 크게 관련 없이

의미 있는 일로서 바라는 이 변화가, 그것에 의해

당장의 생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존재에게는

얼마나 간절하고도 시급하게 바라는 일일까?

여러 범주에서의 위계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나조차

앞으로의 삶이 이렇게나 불안하고 걱정된다면,

자유롭지 않은 그들은 삶이 어찌나 아득히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까?


다수자에게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이 일이,

소수자에게 그보다 쉽게 느껴질 리는 만무하잖아요.

어쩌면 이런 큰 변화는, 그것을 기다리는 실로

보잘것없는 바람들이 필히 긴 시간 오래도록 켜켜이

쌓여야만이 비로소 찾아오는 일인 걸까요?

혹은 다수자 중에서도 가장 강한 다수자,

그래서 우리 사회의 약속을 정하는 데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극소수의 최강자만이

능히 이룰 수 있는 것인 걸까요?

전자라면 치열하리나 못내 아쉬울 것이고,

후자라면 비참하고도 슬픈 일일 따름일 텐데 말이죠.



저의 기여에 대해 고민을 계속하던 차에,

심지어는 더 크고 본질적인 한계마저 느껴졌습니다.

이로써는 큰 변화를 도모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결국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지도 못하겠다 싶었거든요.

참으로 기쁜 가정이지만, 만일 제게 어떠한 큰 진전을

단번에 이루어 내는 엄청난 힘이 있다고 상상해 본들,

결국 사회적 소수자가 생겨나는 그 양자의 구도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수자와 소수자를 나누는 적절한 기준이 무엇이냐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기울어져 있는 두 그룹 사이의 시소게임에서 기적처럼

완전한 평형이 이루어지고 또한 지속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 안에서는 한 생이 무색할 만큼의 긴 시간을 주기로

한쪽이 한 번씩 돌아가며 어려운 위치에 놓이는 것뿐이겠죠.

그나마 그러한 변화의 주기가 있겠다는 예상 자체가,

크게 희망차고도 낙관적인 관점이지만 말입니다.


Human beings have a strong dramatic instinct

toward binary thinking, A basic urge to divide

things into two distinct groups, with nothing but

an empty gap in between.

We love to dichotomize. Good versus bad.

Heroes versus villains.

My country versus the rest.

Dividing the world into two distinct sides

is simple and intuitive, and also dramatic

because it implies conflict,

and we do it without thinking, all the time.

인간은 이원론적 사고에 대한 강한 본능을

지니고 있기에, 어떤 것을 뚜렷한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려는 원초적인 충동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빈 공간만이 존재하죠.

선과 악, 영웅과 악당, 내 나라와 다른 나라들.

이처럼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세상을 두 쪽으로 나누는 것은 간단하고 직관적이며,

갈등을 내포하고 있기에 또한 극단적이에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항상 그렇게 합니다.

-Hans Rosling(1948~2017)


방법이 없습니다.

둘로 나누어져 있는 이 세상에서는 근본적인 구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양자 간의

격차를 완화하는 것마저도 어림없는 일이에요.

사랑을 크게 실천하기 위하여,

해야 마땅할 그런 큰일은 있지 않은가 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이 고민을 시작하였으나,

이제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단계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치열하게 해내고, 후에 그 결과의 미미함을 돌아보며

못내 아쉬워할 운명인 것일까요?

혹은 저 자신이 사회의 큼직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극소수에 속하지 못함을 탓하며, 내내 비참하고도

슬픈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저에게는,

그런 커다란 사랑은 영영 실천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일까요?

그래서 제가 이어온 믿음들은 결국

그 끝을 좌절로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다시, 또다시, 하루 같은 한 계절이 지나쳐만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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