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하이픈 ENHYPEN
탄생 과정을 보여준 방송 프로그램 '아이랜드'부터 다수의 관심을 받아온 신인그룹 엔하이픈(ENHYPEN)이 데뷔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근 가장 주목도가 높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에서 데뷔를 한 만큼 빅히트와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는 데다, 고작 열일곱 살인 멤버 양정원을 리더로 내세우는 특이한 행보에 관심이 가는 데뷔 2주 차의 신인 보이그룹.
그로테스크한 세계관
전반적으로 가사에서 계속 강조되는 단어가 '송곳니', '나의 붉은 눈'이다. 일반적으로는 사랑을 노래하거나, 보이그룹의 꿈을 얘기할 때 잘 쓰지 않을 단어다. 하지만, 엔하이픈은 데뷔 곡에 이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실으며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팀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완전히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만의 신인개발 시스템과 제작 시스템으로 탄생한 팀이 아니다 보니, 이 세계관을 두고 '빅히트 식의 기획과 연출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빅히트 레이블에 소속된 팀이다 보니 그쪽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어딘가 쓸쓸하고 어딘가 어두운 세계관은 빅히트가 명장처럼 잘 구현해내는 감성 중 하나라서 더더욱 그렇다.
이 세계관은 가사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와 안무 전반에도 녹아있다. 뮤직비디오를 재생하자마자 별안간 누군가 코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을 하게 된다던지, 자동으로 혈서가 새겨지는 벽이라던지 하는 것들 등이다.
안무의 대형 중에서는 포인트를 줄 때마다 이런 독특한 별 모양(?)에 가까운 대형을 구현하는데, 기존 보이그룹에서 볼 수 없었던 대형이어서 말 그대로 독특하다. 특히나, 센터에 성훈이 중심을 잡고, 멤버 전원이 걸음걸이를 표현한 안무 역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살리는 안무라고 생각한다.
세계관과 별개로 현실 속 엔하이픈은
이렇듯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팀인 것과는 별개로 지난 10월까지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알 속에 갇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연습생들이었다. (라는 것이 아이랜드의 콘셉트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어떤 신비로운 콘셉트 속의 스토리를 갖는 아이돌이기 이전에 내추럴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먼저 다가왔다. 시종일관 꿋꿋하고 밝은 고딩 선우와 교포 제이크,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성훈, 내 아들이 저랬으면 좋겠다 싶게 똘똘하던 정원, 반전을 이뤄낸 니키, 처음엔 연습생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처럼 등장했지만 이내 하찮은 형이 된 희승, 그리고 KPOP에 종사하면서 처음 보는 캐릭터인 제이까지. 한창 핸드폰을 붙들고 "아 엄마 나가라고!"를 할 것 같은 나이의 연습생들은 핸드폰을 회수당한 채 알속에 갇혀 1부터 10까지 내추럴한 모든 걸 보여줬었다.
주목할만한 멤버
이들 중 유독 눈에 띄던 건 제이. 본업이 가수인 사람들 중 주목할만한 멤버로 예능형 인간을 먼저 꼽는 건 미안하지만, 정말 KPOP 하면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없어서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탓이다.
인터뷰나 연습생 멤버들과 나누는 말 한마디에도 번역체의 말투에 단어 선택이 독특하다. 독특한 사고방식과 그를 표현하는 언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같은 말투에 가깝지만, 영미권 이중국적에 이름은 너무나 서양식인 제이다. (벌써 아이러니 그 자체..)
화룡정점은 외부와 단절된 탓에 본인의 상승하던 인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오늘 떨어져 퇴소할 사람처럼 진지하게 편지를 쓰던 장면이다. 산속 어딘가에 갇혀 있어 산모기에 물린 손에,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는 문어체 인간이므로, 이쪽 제작진도 제이를 놀리고 싶어서 드릉드릉했던 것 같다. (저 오른쪽에 박힌 감성 자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언젠가 연차가 쌓이고 유튜브 자체 콘텐츠에서 자연스럽게 활약할 날이 오면 독특한 캐릭터로 유튜브를 씹어먹을 이 시대의 인재.
아이랜드를 볼 때만 해도 무난하게 데뷔하면 새 데뷔 팀의 리더를 맡겠다 싶었던 희승은 건강한 열정이 넘치는 에너지가 돋보이는 멤버다. 아이랜드에서도 인터뷰를 했듯이, 가장 오랜 연습기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오랜 연습기간 동안 연습생 동기들이 먼저 데뷔하는(TXT) 모습을 봤어야 했고, 그래서인지 이 기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매사에 임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지금도 당나귀 같은 커다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열정을 불태우는 중인 듯하다.
최연소 리더로 KPOP씬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정원. 아이랜드 생방송에서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정원을 꼭 집어 이야기하면서 "잘 봤다"라고 얘기할 만큼 엔하이픈 일곱 멤버 중 단연 무대에서 돋보인다. 어린 나이에도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이나 곡 해석 능력이 뛰어나다. 데뷔곡 뮤직비디오에서는 누구라도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설정의 송곳니가 자라난 모습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 선보였다. 똑 부러지는 성격이 말투에서조차 묻어나고, 좋은 의미로 여우같이 똘똘하게 처신할 것 같은 이미지다. 아들이 있다면 저런 아들이 있었으면 싶다.
아쉬운 점
웰메이드 신인 팀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조금씩 보인다. 우선, 일본인 멤버 니키의 타 그룹과의 차별점이다. 아이랜드의 방송이 끝나고 엔하이픈이 데뷔를 준비하는 동안 데뷔한 NCT의 쇼타로나 트레저에 다수 속해있는 일본 국적의 멤버들과 같이, 비슷한 나이와 연차의 타 팀 멤버들에 비해 눈에 띄거나 특출 난 능력이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 멤버. (아직까지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팀이므로, 앞으로를 더 기대해본다.)
멤버들의 보컬이 전체적으로 하이톤인 점도 아쉬운 점에 꼽을 수 있다. 높고 낮음이 공존하는 사운드가 아닌, 전체적으로 높은 사운드로만 보컬이 진행되다 보니 머릿속에 기억은 잘 남을 수 있어도 이지리스닝 하기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컨셉추얼 한 엔하이픈, 다음 곡은 어떨까?
데뷔 앨범은 초동(발매 일주일 간을 말함) 판매고 20만 장을 팔아 치우며 괴물 신인의 등장을 알렸다. 이들 특유의 세계관 역시 정리된 곡으로 활동하며 동시에 커플곡으로는 따뜻하고 밝은 동생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끼와 능력치가 충분한 멤버들, 거대 기획사 레이블의 기획력과 자본력, 초동 판매량으로 입증된 팬덤. 모든 재료는 준비가 되어 있다. 과연 이들이 언제, 어떻게 포텐을 터트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음악채널 PD의 눈으로 본 2020 주목할만한 신인그룹
트레저, 엔하이픈, 위클리, 에스파 네 그룹을 리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