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첫만남 끝만남?
반쯤 걷힌 커튼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 뜨고 처음 보는 낯선 방안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순간 용수철에 튕기듯 벌떡 일어난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우리 섹스 할까?”
한 남자가 내 옆에 누워 말을 건냈다. 나는 순간 어제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 옷 매무새를 살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제 일 생각 안나요?”
“아~ 어떡해... 이제 나랑 안 만날 거죠? 그쵸? 아 어떡해...”
어제는 회사 동료가 주선해준 소개팅 날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은 남자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최대치로 좋았다. 이 남자랑 너무 잘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저녁을 먹고 나와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러 들어간 바에서 나는 그만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
“이제 그만 마셔요~ 집에 가야죠?”
“아 나 괜찮아요. 안가도 돼요 안가도~ 나 화장품도 다 챙겨 와서 괜찮다니까? 자, 봐요! 다 있죠? 그러니까 집에 안가도 돼요”
적당히 톡 쏘는 맥주의 탄산이 식도를 따라 흐르며 내 의식도 점점 저 멀리 흘러갔다.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지만 당혹스러운 그의 표정은 자체적으로 흐릿한 블러처리 해버린 듯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나. 오빠~ 캬캬쿄쿄”
“...”
적당히 내숭떨며 조신하게 행동해도 잘 될까 말까인데... 직장 동료 소개로 만난 남자 앞에서, 그것도 너무 맘에 든다면서 말술을 먹고 말만한 아가씨가 취해 집에 안 간다고 떼를 쓰다니...
“아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너무 창피하네요..”
“하하하 살다가 이런 일도 겪어보고 ... 재밌었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요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그리고 어제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걱정 말아요. 연락 할게요”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출근하기 위해 먼저 나선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게 끝임을 직감했다.
...아직도 나는 가끔 이 때의 일이 떠오를 때면 자다가도 허공을 발로 차며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