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구멍 난 조끼
내가 엄마와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때도 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 가끔 엄마의 일터로 함께 출근을 했다.
거실에는 엔틱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고급스러운 벽지를 댄 벽면에는 영창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가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 근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밝은 미소를 띤 모습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베란다 창 앞에 엄마는 조물주 앞에 회개하듯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흡사 율법 앞에 죄인이던 마리아와도 같았다. 구석구석 걸레질하며 자신의 죄를 씻고자 하듯 그녀는 묵묵히 일을 해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흡사 그 가족에 속해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주인아줌마가 주신 달콤한 쿠키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가끔 이렇게 엄마 손에 이끌려 가는 날이면 심장이 기쁨으로 콩닥였다. 소공녀가 비밀 친구로부터 몰래 멋진 만찬을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이 이보다 설레었을까? 그 집에 가면 운 좋게도 그 집 언니가 읽던 책이나 학용품 따위를 받아오는 날도 있었다. 반짝반짝한 비닐 소재로 겉면을 둘러싼, 뚜껑을 열면 2단 수납장이 뿅 튀어 나오는 필통도 그 집에서 받아온 것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글자가 빼곡한 책들도 그 언니가 물려준 것이었다.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글자를 읽는 것 자체가 좋아서 몇 번이고 읽었던 책들은 아이의 방구석에 쌓여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이마에는 송글한 땀방울이 맺혀갔다.
걸레를 잡은 두 손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운동장만한 온 집안을 청소하던 그녀가 마침내 몸을 펴고 일어나는 순간은 다음 집안일을 시작할 때였다.
얼마 후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나와 집으로 향했다.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그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집에 머물고 있었다. 광이 나는 멋진 피아노도, 책장 가득 빼곡한 책들도 모두 나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슬퍼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슬며시 잡힌 손을 빼내고 느린 걸음을 걸었다.
앞서 걷는 엄마의 조끼에는 솜이 터져 나온 구멍이 하나 있었다.
내 발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이제 나는 성인이 되었다. 지금 나의 나이보다 어렸던 엄마의 마음에 구멍은 없었을까? 가정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희생했던 어린 엄마를 안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