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공주가 될 순 없나?
엄마는 생업 때문에 바쁘고 고단하여 자식들을 섬세하게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아니, 나의 엄마도 새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기에 자식을 챙기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주기적으로 목욕을 하거나, 잠들기 전에 발을 씻거나, 때가 되면 속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기본적인 생활습관조차 잡아주지 못한 결과로 의복은 늘 때가 껴 있고, 몸에서 냄새가 났다.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던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뜨개질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그녀는 뜨개질을 잘해서 한동안 나와 오빠의 옷을 떠주었다. 회색 바탕에 다이아몬드 무늬 조끼라든지 단색 긴팔 스웨터같은 것들을 말이다. 열심히 며칠을 떠서는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한 벌은 파랗고 털이 길다란 털실로 짠 롱가디건이었다. 긴 털이 약간 까슬까슬했지만 앞판에는 은근한 꼬임 모양으로 포인트를 주고 꽤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썩 고급지게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하루는 짝궁이 나의 가디건을 보더니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이 짝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가 봐도 부잣집 도련님 스타일로, 학부모참관수업 날인가 특별한 행사가 있어서 도시락을 싸올 때 치킨 바비큐같은 눈이 휘둥그레해질 만한 도시락을 펼쳐 놓던 아이였다. 옆자리에서 김치 따위의 반찬에 맨밥을 먹으며 부러워하던 내 모습. 교실 창밖에 매달려 우리 아들 맛있게 먹으라고 아주 자랑스럽고 사랑스레 쳐다보던 그 아이의 엄마. 그녀 말고도 자식을 사랑해서 응원하러 찾아온 창문가의 엄마들. 그 엄마들 틈에 우리 엄마도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야~ 너 옷 이거밖에 없어? 너무 이상해... 겉옷 벗어봐...어?”
친구의 말에 갑자기 부끄러워진 나는 기분이 나쁘거나 저항할 생각도 없이 순순히 겉옷을 벗었다.
짝궁은 진심 안타까운 듯 다시 말했다.
“이것 봐, 야~ 속에 김민제 원피스 입고 있으면서 왜 그런 거지같은 걸 입고 있어? 벗으니까 공주같잖아! 앞으로 이거는 입지마. 어? 진짜 이상해. 그거 입고 있으면 진짜 초라해보여”
누군가에게 물려 입은 원피스와는 달리, 가디건은 엄마가 새로 떠주신 새 옷이었는데...
순간 가디건이, 털이 덥수룩한 몬스터처럼 느껴졌다. 쇳소리나는 고함을 지르며 더럽고 추한 털이 온몸을 뒤덮은 몬스터. 몬스터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켜버려서 마치 내가 몬스터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 후로도 엄마는 나에게 옷이나 악세사리따위를 잘 사주진 않으셨다. 나에게도 적당한 허영심이 있었지만 엄마에겐 쓸데없는 것일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등교하는 여자 친구들 중 머리가 긴 친구들이 모두 리본 핀을 꽂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앞서 걷는 친구들의 뒷통수를 보며 세어보았지만 리본 핀을 꽂지 않은 친구는 나뿐이었다. 나는 엄마께 리본 핀 하나만 사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리본 핀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었을 텐데 엄마는 무슨 이유에선지 사주지 않으셨다.
‘이걸로 만들면 되겠다!’
바닥에 하얀 리본 끈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광택 나는 흰색에 양옆으로 레이스가 장식된 선물용 포장 끈이었다. 나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소중히 집어 들고 최선을 다 해 리본을 묶고 또 다시 묶었다. 완벽한 리본의 형태가 되게끔. 그런 후 기다랗고 까만 일자 핀에 리본을 기우고 머리에 달았다.
“너 이게 뭐야! 어디 초상났어? 얼른 빼지 못해!?”
리본 핀을 한 내 모습을 보고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얀 리본은 초상났을 때만 머리에 다는 것을 알 리가 없던 나는 눈물을 머금어야했다.
그 후 미안했던지 엄마가 드디어 리본 핀을 하나 사주셨다. 내가 원하던 핑크색, 혹은 발간색 화려한 리본은 아니었지만 진한 녹색에 까만 레이스가 달린 고풍스러운 디자인이었다.
매일 리본 핀을 하고 등교하면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