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아빠
우리 아빠는 목사였다.
아빠가 목회를 결심한 데에는 큰 계기가 있었는데 기도원에서 새벽기도를 하다가 굉장한 성령 체험을 하게 되셨단다. 그 후 공부를 시작해 신학대학에 입학하셨고 우리 가족의 긴 가난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뒤늦게 시작한 목회활동 중에 일찍 목회를 시작한 동료들 간에 보이지 않는 서열에 괴로워했다. 노회에서 임원직을 맡지 못한다든지 자신보다 좋지 못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똘똘 뭉쳐 그들만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는 것들을 분노하는 등 가감 없이 자신의 감정을 식구들 앞에서 표현하곤 했다. 그리고 자신은 오로지 공부만 한 머리로 신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영적인 존재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빠는 거침없고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의 소유자로, 세상적으로 따진다면 술 한 잔 하는 즐거운 자리에서 자주 찾을법한 남자답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목사라는 신분으로써 모든 양들을 아우르며 살아야 하기에, 타고난 성격을 누르며 사는 것이 영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스트레스는 종종 가족에게 전해졌고 나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아빠의 기분상태가 집안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고 또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렇지만 아빠는 가끔 전기구이 통닭을 사와 식구들에게 안겨주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가장이었다. 게다가 장마철 반지하 집에 물이 쳐들어올 때 물 바가지로 다 퍼내며 가족을 지키고, 벌레나 쥐가 나오면 때려잡고, 맛있는 고추장찌개도 잘 끓이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힘도 센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아빠가 신자들에게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돼지갈비를 쏘겠다고 불러 모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공로를 치하하고 덕담이 오갔다. 돼지갈비 맛은 꿀맛이었다. 화통하게 많이들 먹으라고 감사인사를 전하는 아빠의 모습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아빠의 지갑 속에서 10만원권 수표가 나와 지불되었고, 집에 가는 길에 사탕정도는 사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모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는 별안간 화를 내며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어찌나 잘들 먹는지, 아니 목사가 돈을 내기로 했는데 다 먹고 또 몇 인분씩 더 시켜서 먹고 날 잡았어 들!”
호기로워 보이던 아까와는 달리, 내 아빠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아빠도 그다지 멋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