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그 일이 없었다면 잘 쳤을까?
어느 날 나는 피아노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던 나는 학원이란 곳을 다니게 된 것이 내심 기뻤다. 없는 형편에 피아노라는 고급진 악기를 다루게 된 이유는 교회에서는 늘 반주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아빠 교회에서 반주해야 한다는 가족사역의 의무를 안고 나는 피아노를 배웠다. 잘 치진 못해도 제법 두 손으로 뚱땅뚱땅 두드리는 게 재미있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한 가지 나의 재주를 발견했는데 청음능력이 꽤 발달해 있었던 것이다. 악보를 보지 않아도 소리만 듣고 완벽하게 그 소리를 피아노 음으로 재현해낼 수 있었다. 피아노 치는 게 즐거웠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도 손가락으로 음계를 생각하며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슨시간에 원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피아노 치는 사람 손이 이게 뭐니! 손에 때 좀 잘 씻고 로션도 바르고 와라!”
찰싹~ 찰싹~ 피아노 치던 내 손등을 30cm자로 때리셨다. 눈물을 참으며 거뭇거뭇 얼룩지고 터서 보기 싫은 손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보드라워 보이는 원장님 손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더 이상 학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 일을 엄마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얼마 후 피아노 학원 발표회를 했다. 내가 연습한 곡은 많이들 들어봤을 클레멘티 소나타 다장조, 36의 1번 중에서 3악장 Vivace였다. 나는 집에서 혼자 있다가도 손가락으로 연습하고 열심을 다 해 곡을 익혔다.
발표회 날, 아이들은 엄마아빠 손을 잡고 모여들었다. 발표회장은 북적였고 손님들을 위한 다과상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과자를 먹고 싶었지만 눈치를 보다 먹지 못했다.
연주회가 무사히 끝나고 다들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하나씩 품에 안고 돌아갔다.
나는 올 때도 혼자, 갈 때도 혼자였다.
엄마는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끝내 발표회장을 찾지 않았다. 그 날은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혼자 무료하거나 긴장되는 순간이면 자동으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미레도도솔 파미레파시 도솔솔 미레도도솔 파미레미파미파레도...
1년을 채운 후 학원을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