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원해도 가지지 못하는 경험
나는 한때 섬에 살았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서 쭉 자라온 동네 친구들과 섞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님은 섬 특유의 폐쇄성에 맞서가며 새로운 사역지에서 목회에 전념하셨고, 오빠와 나도 부모님을 도와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봉사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때 나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였는데 도무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신앙심을 가질 수 없었다. 평소에 매일 벌겋게 술에 취한 얼굴로 길을 배회하시는 분인데 교회에서 대표기도 할 때 보면 세상 천사같은 말씀들을 줄줄이 읊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고, 통성기도 시간에 너무도 처철하게 몸을 떨며 마음속 간절한 바램을 울며 기도하는 권사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주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믿는다고 외치는 장로님, 강단에 서서 속사포랩같은 기도문으로 나라와 민족의 평화에서 어린양들의 건강과 축복을 기원하는 아빠의 기도가 한데 뒤엉켜 내 머릿속을 휘저으며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도무지 저들이 진심 신앙의 힘으로 구하는 것인지, 맺혀있는 울분의 감정을 토해내기 위함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리 애써보아도 믿어지지 않는 나 자신이 창피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목사딸로써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했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해야한다고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지역에서 연합 부흥성회 집회가 열렸다. 다른 교회에 가서 초빙해온 부흥강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갈구하는 교인들 모두 합심하여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기도하며 부르짖었다.
예배 시작 전, 찬양시간에 찬양 인도 팀에는 내 또래 여자아이가 있었다. 유독 눈길을 끄는 그 아이는 무언가에 깊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는 고통과 아픔따위는 없다는 듯, 내 앞의 신을 온전히 마주하는듯한 그 아이의 계산되지 않은 모습을 보며 나는 충격에 빠졌다.
그 모습은 언젠가 읍내 장날 품바 각설이공연에서 보았던 한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읍내 장날구경은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생활 중 하나였다. 온 가족이 나와 밤중까지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사먹으며 뜨겁고 무료한 여름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쿵쿵 베이스 소리와 함께 흥겨운 악기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호기심에 이끌려 간 그 곳에는 우스꽝스러운 각설이 분장을 한 사람이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는 특유의 분위기로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든 후 이어서 흥겨운 노래 공연을 시작했다.
많이 들어본 흔한 유행가 가락에 맞춰 노래하는 뒤로 내 눈길을 끈 이가 있었으니, 나이가 많아봤자 15, 16세?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소년이 신명나게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쉬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팔을 움직여 북을 치는 모습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웃옷을 입지 않은 그의 몸은 미끈했다. 박자를 맞추느라 위 아래로 몸이 움직일 때마다 군살 없는 배의 근육이 꿀렁였다. 거무스름한 피부는 곧 땀으로 젖어 조명에 반짝였고 머리를 젖힐 때마다 입을 굳게 다문 입을 갸름한 턱선이 드러났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북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는 동안 내 심장도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신에게 자신의 전부를 바칠 듯 춤을 추던 부흥회 소녀의 모습과 각설이 품바공연에서 드럼 치던 소년의 모습은 왠지 닮아 있었다. 온 몸에 힘을 뺀 몰아일체의 모습. 번뇌와 고통, 불안 따위는 사라진 상태...
나는 지금까지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모습을 보며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40이 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는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