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

기다림 그리고 기다림

by 여섯
참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다 역시.



0. 출발. 정말 일찍 일어났다. 지난밤엔 눈이 내렸고 무거운 눈꺼풀과 사투하며 시동을 걸고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었다. 굳이 (패딩 말고) 코트를 챙겼다. 파리에서 패딩을 입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작은 눈발에 앞유리와 뒷유리가 자꾸만 흐릿해졌고 기대나 설렘보다는 귀찮음과 피로 속에 도로를 달렸다.

1. 가득 찬 장기 주차장에서는 연거푸 한 숨이 삐져나왔고 처음으로 지붕이 없는 주차장에 차를 며칠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3배나 비싼 돈을 내고 지하주차장에 갈 요량도 없는 나지만...

2. 공항에 들어오니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졌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냈고 높은 천고에는 모두의 이야기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3. KLM으로 예약을 했지만, 실제 탑승은 에어프랑스였다 (뭐 같은 회사이니까) 하지만 에어프랑스는 단 하나의 창구만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전날 밤 호기심에 눌러본 온라인 체크인 덕에 수화물만 간단히 보내고 보딩패스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출입국 수속 대기 줄에서 40분 남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쏟아지는 여행객 인파 덕에 보안검사대에 선 직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고, 평소보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다들 우왕좌왕하느라 수속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4. 힘들게 다다른 면세 구역과 제2 탑승동으로 가는 셔틀 트레인은 세일 막바지 백화점과 출근길 지하철을 방불케 했고, 온라인 면세점에서 산 단 하나의 크림을 찾기 위해 또 2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온라인 면세점을 중국인들도 이용하다니.. 롯데면세점 칭찬해. 대단해.

5. 습관처럼 아시아나 비즈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게이트로 향했다. (.. 벌써 지친 느낌) 탑승이 시작된 게이트 줄은 출발 시간이 지나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에어프랑스 직원들은 퉁명스러웠다. 단 한 명의 한국 승무원은 여기저기 분주했다. 자리에 앉고 나니 설렘은커녕 두려움이 몰려왔다.

6. 좁았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너무 시끄러웠다. 불이 꺼지면 조용할 줄 알았던 옆자리 친구들은 독서등을 켜고 와인을 마시며 4시간 동안 수다를 이어나갔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 보아도 들리는 단어들.. 다시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경험이다. 신 기종으로 새롭게 꾸민 에어프랑스의 이코노미는 상상 이상으로 좁았다. 프리미엄 이코노미 정도는 되어야 대한항공과 비슷하다랄까.


7. 기내식은 맛있는 편이었다. 작은 병으로 주는 와인도 좋았고 (에어프랑스에서 서브되는 와인은 마니아 층도 존재한다! 그 종류가 때에 따라서 변경되기는 하지만 주로 가성비가 좋고 무난한 맛을 낸다) 식사가 끝난 후 비행기에서 먹는 메로나는 상상 이상의 즐거움!

8. 더빙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한참을 뒤적이다가 뒤늦게 시그널도 보고.. (딱, 1편만 제공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ㅠㅠ) 휴대폰 게임도 하고.. 간간히 잠들고 깨고.. 12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렀다.. 마지막으로 한 끼 더 챙겨 먹으니.. 도착이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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