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걷고 걷다.
0. 정확히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새벽 다섯 시에 깨버렸다. 다시 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잠이 올리가 있나.. 포켓몬이나 잡았다 (...) 잠깐 포켓몬고 이야기를 보태자면 파리에서 걷기 힘들 때마다 포켓 스탑을 돌려가며 포켓몬고에 의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유럽에만 나오는 지역 한정 포켓몬인 '마임맨'도 잡았다는.. (무려 돌아와서 알게 됨) 다섯 시부터 오늘 뭐 할지 검색과 구상을 했다! 역시 계획이란 없었..
1. 결국 시차 적응 못하는 관광객을 아침 일찍부터 맞아주는 곳은 호텔 조식당과 박물관/미술관뿐.. (나중에 알 보고니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가게는 빵집 밖에 없었다..) 조식당은 호텔과 달리 꽤나 훌륭했는데, 본전 생각에 자꾸만 입에 넣었다. 빵과 치즈 요거트까지 먹고 싶은 것들 천지였으니까.
2. 지하철을 처음 탔다. 소매치기당할까 잔뜩 긴장한 데다가 냄새나고 더럽다는 말에 걱정이 앞선 파리 지하철. 하지만 막상 이용해보니 둥근 돔 형태의 플랫폼은 묘한 안정감을 줬고, 방향이나 행선지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지하철 역은 타고 내리기 정말 편리했다. 환승이나 시설을 생각하면 서울에 으리으리한 지하철들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여행 내내 편하게 이용했다.
3. 루브르 박물관 도착. 비수기라서 줄도 짧았고 역시나 추운 날씨에 기다리는 관광객도 적어서 거의 대기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루브르 박물관 테러 소식도 들렸는데, 파리에 대부분 관광지에서는 테러의 여파인지 보안검색이나 무장한 군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 그 와중에 또다시 테러라니..)
4.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대여했다. 닌텐도 DS로 지도+오디오 가이드까지 합본이었는데 정말 신세계! 작품 설명은 물론이고 루브르의 주요 작품 코스 안내와 작품 검색 및 길 찾기도 가능했다. GPS와 UI, 가이드 모두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누군가 루브르를 방문하게 된다면 난 어떤 작품이 아닌 오디오 가이드를 추천할 듯.
5. 주요 작품 중심으로 봤다. 누구나 본다는 그것들. 작품보다 더 극명하게 체감되는 것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노력들,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와 정신에 매료되었다. 사실 박물관에 있는 많은 작품이나 문화제가 전쟁이나 식민 지배지에서 구매를 가장한 약탈을 통해 프랑스로 넘어온 것이 많아, 꽤나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박물관과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보존에 대한 노력을 보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문화제 약탈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외규장각을 보라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례인가) 루브르는 채광도 훌륭했다. 대부분 자연채광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관람객의 동선이나 관람 규모를 고려한 작품 배치도 돋보였다. 반나절을 끝없이 돌아다녔음에도 반에 반도 채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6. 늦으막히 점심식사를 하려고 Marcel까지 조금 걸었다. 제길.. 폐업했다. 폐업한 자리에 새로 오픈한 자연주의 카페인 Marcella에서 뜻 밖에 점심을 먹었다. 구글 맵에 있는 매장을 이곳저곳 쫒다 보니 팔레루아얄 까지 왔다. 봄이나 여름에 왔다면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일 텐데, 그래도 공원 어귀에 앉아 샌드위치로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정원을 두르고 있는 건물들에는 작은 샵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ACNE 덕에 방문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팔레루아얄.
7. Telescope 가 근처여서 방문했다. 테이블이 5개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잠시 서울인 줄..
8. 곧장 다시 걸어서 마들렌 명품거리와 콩코드 광장까지. (이 날 도대체 얼마나 걸은 건지)
9. 새로운 숙소로 이동했다. 9Hotel Opera 인데 파리 호텔 치고 꽤 저렴했다. 1박에 100달러 정도였고 룸 컨디션도 깔끔하고 위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정말 좋았다. ( =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괜찮은 술집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