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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스테라 Jun 13. 2021

안녕, 리투아니아

짤막한 여행


9/7 Thursday


 마르티나와 아침 인사를 주고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 무슨 계획 있냐고 물어봤더니 우리 둘 다 계획이 없어 마침 가고 싶었던 카우나스 동물원에 가자고 했다. 우리 방은 두 개의 방이 하나의 화장실을 공유하는 방이었는데 옆 방에는 두 명의 안나가 살고 있었다. 체코에서 온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안나와 조지아에서 온 키가 나보다 작은 안나였다. 옆 방문을 두드렸더니 조지아 안나가 있길래 오늘 같이 동물원에 가는 거 어떻냐고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전에 나는 아직도 학과 건물 가는 길을 잘 모르겠어서 거기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다. 아직 개강을 하지 않아 조용한 학교를 둘러본 뒤에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는 동물원으로 출발했다. 마르티나는 역시나 말이 별로 없었고 나는 적절한 속도로 영어를 하는 안나와 주로 대화했다. 자유자재로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다른 다른 친구들과 달리 우리의 영어 실력은 비슷한 듯했다. 마르티나가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 즐거운지는 정말 모를 지경이었다.


리투아니아의 동물원은 한국의 동물원보다 더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 봤자 동물원이지만 말이다. 철창에 갇힌 앵무새를 보는 건 슬픈 일이었지만 사육사의 어깨 위의 아기 원숭이와 호수에 자유롭게 떠다니는 백조와 오리들은 꽤나 근사했다. 최대한 자연친화적으로 구성된 동물원의 흙길에는 민달팽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동물들이 행복한 국가가 사람이 행복한 국가라고 했는데 리투아니아의 동물들은 한국의 동물들보다 행복할지 궁금했다.


저녁에는 기숙사에서 꽤 멀리 떨어진 Combo라는 곳에서 웰컴 파티가 열렸다. 이번에는 옆 방의 체코 안나가 웰컴 파티에 가냐고 먼저 물었고 우리는 한껏 차려입은 뒤 택시를 타고 콤보로 떠났다. 입장료는 5유로, ESN카드가 있는 사람들만 입장 가능했다. 내가 가본 리투아니아 클럽과 펍을 통틀어 제일 한국 클럽과 유사한 클럽이었다. 정확하게는 강남 클럽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쿵짝대는 edm이 나오고 한쪽 구석에는 테이블석이 자리해 있었다. 좀 다른 점이라면 지하가 아니었고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널찍해서 답답하지 않았다. 그 큰 몸으로 유연하게 그루브를 타던 안나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E와 G, S 무리를 만났다. 파리자와 카밀레라는 새로운 리투아니아 친구도 그곳에 있었다. 술 한잔도 마시지 않고도 나는 취한 듯 춤췄다. 한국인 무리를 따라 나간 흡연 구역에서 보이는 풍경에 갑자기 감성에 젖었다. 그날 밤 달은 유난히 동그랗고 주변을 다 밝힐 듯이 밝았고 다리 밑으로는 호수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클럽 안에서 나오니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우리 빼고 온 세상이 잠자고 있었다.





9/9  Saturday


빌뉴스로 한국인 무리와 함께 이틀간의 여행을 떠났다.

이틀 전 조용하던 카톡방을 깨운 내 여행 제안을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시끌벅적한 것보다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나의 동행 최대 인원은 1명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혼자 내일로 티켓을 끊어서 새마을호를 타고 몇 개의 도시를 거쳐 부산까지 가보기도 했고, 도쿄, 싱가포르, 오사카, 뉴욕과 같은 도시도 운이 좋게 여행할 수 있었다. 남자 셋과의 여행은 내게 생경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동양 여자가 보기 힘든 이 나라에서 어떻게든 위험한 일에 처하지 않으려면 동양인이라도 남자랑 붙어 다니는 게 나았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셋이니 마음은 든든히 여행할 수 있었다.


 열 시 기차를 타려면 8시에 일어나 한 시간을 준비하고 간단히 밥을 먹고 부지런히 움직여 택시로 역까지 이동해야 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니 옷은 속옷 빼고는 안 갈아입을 예정이어서 배낭 하나면 충분했다. 여행의 설렘보다 생체 시계가 더 중요한 이 남자들은 더 자고 다음 기차를 타고 따라가겠다고 했다. 얼떨결에 혼자 출발하게 된 나는 오랜만에 애인과 여유로운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하루를 나누는 기쁨은 한국에서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때에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떨어져 있으니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이 어떤 웃긴 말을 했는지, 친구들은 잘 있는지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 더 궁금해졌다. 떨어져 있는 시간을 용납 못한다는 듯이 우리는 사진과 채팅과 영상통화로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빌뉴스 기차역에 도착하여 나와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맥도날드였다. 어느 나라를 가도 보이는 이 맥도날드는 각 나라의 개성을 잘 반영하고 있기도 했다. 리투아니아의 맥도날드는 잔디가 잘 가꾸어진 마당이 있는 작은 집 같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유럽 여행 사진집에서나 본 듯한 질감의 벽이 왼쪽에 늘어져 있었고 조금 더 쭉 걸어 나가니 올드 타운으로 가는 ‘새벽의 문’이 보였다. 올드 타운에는 내가 예약한 호스텔이 있었고 기차에서는 채팅을 주고받느라 못 잔 잠을 실컷 잘 수 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로 와서 첫 여행인 만큼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호스텔 입구의 벨을 눌렀다. 딩-동-하고 눌렀지만 조용했다. 체크인 시간은 넘었지만 아직 손님 받을 준비가 안됐나 보다. 잠이 쏟아졌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잠도 깰 겸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올드 타운에서 제일 유명한 기적의 성모 마리아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며 숨이 막 벅차갈 즈음에 도착한 성당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어딜 가도 한산한 카우나스에 있다가 오랜만에 사람들 틈에 끼여 있으려니 머리가 어질 했다. 기적의 성모 마리아는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서 왔다고 한다면 흑인이나 동양인으로 태어났어야 한다고 주로 생각했기에 이 성모상이 마음에 들었다. 마침 주일인 내일 아침 이곳에서 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체크인을 도와주며 대화를 주고받은 리투아니아인 호스텔 아르바이트생이 같이 사우나를 하자고 추근덕거렸다. 나는 좀 자고 싶다고 대충 둘러대며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마주치면 정말로 사우나를 같이 해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아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내 돈 내고 온 숙소에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에 쫓기듯이 지내야 한다는 게 못내 서럽고 답답했다. 언젠가는 꼭 네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싶다고 한마디 하는 게 소원이었다. 막상 당하고 나면 벙쪄서 아무 말도 못하고 바보같이 웃으며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게 최선이라는 걸 당해본 여자들이라면 다 공감할 거다. 그 일 때문인지, 밖의 명랑한 종소리 때문인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E, G, S와 무사히 만난 것에 기뻤다. 카우나스도 기숙사도 아닌 곳에서 그들을 만나서 신났다. 같이 올드 타운 길을 쭉 걸어보기로 했다. 모두 밥을 안 먹은 터라 혹평이 자자한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백 번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음식이나 여행에 있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우리는 감자전과 비슷한 것, 비트로 만든 핑크 수프, 제일 유명한 감자로 빚은 만두 같은 째펠리니, 그리고 익숙한 연어 샐러드를 주문했다. 사람이 여럿이니 음식도 여러 개를 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크게 싸우는 일만 없다면 같이 계속 여행을 다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핑크 수프를 빼곤 모두 생각보다 괜찮았다. 물론 이 생각이라는 게 먹자마자 음식을 뱉는 최악의 맛을 이미 가정해 두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핑크 수프는 특유의 시큼한 맛 때문에 정말 먹다가 뱉을 뻔했다. 차라리 식초를 마시는 게 나을 듯했다.



 우리는 후식으로 젤라또를 먹으며 근처 유적지로 이동했다. 유적지로 걸어가는 길에도 우리는 이름 모를 성당들을 많이 지나쳤다. 유적지는 카우나스 성이랑도 비슷하게 생겼다. 주황색의 세월의 흔적이 깃든 벽돌들이 가지런히 더 진한 주황색의 지붕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 나라의 흙 색깔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건축물이라고 하던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리투아니아의 흙은 주황색인 모양이었다. 유적지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언덕 위에 도달했다. 우리가 지나온 성당들과 언덕 위에 편안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이 보였다. 나도 잠시 그 위에서 한국에 있는 내 애인과 나란히 앉아 티티카카를 주고받던 때를 떠올렸다. 함께 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함께하는 상상을 하는 게 장거리 연애의 묘미이기도 했다. 걷다가 지친 우리는 공원에서 무슨 맛인지 읽을 줄도 모르면서 고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서 쉬다가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이름처럼 진짜 나라는 아니지만 만우절 단 하루 동안만 나라가 된다. 휴대폰으로 찾아본 그곳은 작업실, 갤러리, 카페 등이 곳곳에 있고 많은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중앙에 그네가 설치되어 있었고 물줄기를 가르고 그네에 앉는 사람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환호한다는 것이 낯설면서 재미있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다리의 우측으로 보이는 대략 3층으로 보이는 빌라의 공동 현관에서는 빨랫줄을 길게 걸어놓고선 빨래를 널고 있었다. 누가 가져가든지, 바람에 옷이 날아가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거리를 걷다 보니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는 그래피티와 오래된 벽이 잘 어우러져 유럽의 빈티지한 감성을 한껏 더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입구에서는 그들이 하나씩 만든 헌법 동판을 볼 수 있었다. 헌법은 반갑게도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 1. 모든 사람은 빌네레 강변에서 살 권리를 가지며, 빌네레 강은 모든 사람의 곁에서 흐를 권리를 가진다.’ 강에게도 권리를 부여한 것이 자연친화적인 리투아니아의 정서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2. 모든 사람은 겨울철 온수와 난방과 기와지붕을 가질 권리가 있다.’  가난한 자들이 많았다던 이 도시에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법이었다. 한국에서는 겨울마다 연탄 나르기를 하는 봉사자들을 떠올리며 사회 빈약층을 위한 이토록 명료한 법이 있는 ‘우주피스 공화국’이 흥미로웠다. 이 외에도 개와 고양이를 죽을 때까지 돌볼 권리, 사랑할 권리, 게으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등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권리는 ‘실수할 권리’ 그리고 ‘포기하지 마라’였다. 매일 새로운 것과 마주해야 하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상징이기도 한 천사상 앞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이를 업고 자전거를 끄는 아빠,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커피 마시는 할아버지, 지나가는 여행객. 이제 리투아니아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여행객과 거주민을 쉬이 구별해낼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해가 지는 시각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노을을 감상하러 이동했다. 언덕은 생각보다 가팔라서 숨이 헉- 헉- 쉬어졌다. 계단을 오르던 건 우리뿐이라 아무도 없는 거 아니냐며 장난쳤지만 위에 도착하니 우리 말고도 노을을 보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주황색 지붕들 위로 새빨간 해가 뉘역 뉘역 가라앉고 있었다. 걷느라 바빴던 하루도 함께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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