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블루밍 Aug 26. 2021

빨간 날

브레이크가 필요해


버스가 자꾸 빨간불에 걸려 멈추고 출발하기를 유난히 반복하던 날이었다. 하필 예민한 상태였던 나는 마치 이 브레이크가 내 하루를 방해라도 하는 양, 계속 멈추는 버스에 짜증을 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자꾸 멈추는 건지, 이러다가 지하철을 놓치는 건 아닌지.


버스는 항상 지나던 거리를 변함없이 가는 중이었고, 기사님은 신호를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을 했다. 모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채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나만 화가 난 거다. 그렇다면 이건 내 문제였다. 빨간불을 만나 불꽃을 일으킨 건 순전히  탓이었다.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실패했다.


정작 브레이크가 필요한 건 내 감정이었던 것이다.


브레이크는 엑셀보다 중요하다. 브레이크가 발에서 더 가까운데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멈추지 못하는 차는 재앙이다. 있는 게 없느니만 못하다. 세상살이 또한 다를 바 없다. '멈춤'이 없는 인생은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멈춤이 있기에 달릴 수 있고, 걸을 수 있다.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면, 행운의 바람을 만나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장이 덜 난다.


삶의 무게 견디기 힘들어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여 그대로 두면 큰 병이 날 것만 같을 때. 하던 일 잠시 접고 가까운 숲으로 가자. 초록 숲의 시원한 바람결에 모든 근심걱정 흩어버리자. 숲속의 고요한 평화와 파릇파릇한 생명의 기운 가슴속 깊이 모시어 들이자.

- 정연복 시인, <숲으로 가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할 때 항상 주의하는 게 있다. 우리 강아지는 산책을 무지 좋아하는데 산책을 나가면 본인이 과호흡 인지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뛴다. 오늘만 살 것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산책을 자주 시켜줄 수밖에 없다.


무튼 과호흡이 오기 전 적당한 때에 강아지를 꽉 안아준다. 숨 좀 쉬어가며 뛰라고.


항상 말은 는데 알아듣는지는 잘 모르겠다. 귀여운 것. 만일 당신이 오버페이스라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멈춰 자신을 꽈악 안아줘라. 온기가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우리, 좀 쉬어가 보자.


빨간 불꽃이 애먼 데로 향했던 그날. 아마도 그날은 버스가 아닌 나에게 브레이크가 필요한 날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회사만 다니지 나한테 관심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