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가 필요해
버스가 자꾸 빨간불에 걸려 멈추고 출발하기를 유난히 반복하던 날이었다. 하필 예민한 상태였던 나는 마치 이 브레이크가 내 하루를 방해라도 하는 양, 계속 멈추는 버스에 짜증을 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자꾸 멈추는 건지, 이러다가 지하철을 놓치는 건 아닌지.
버스는 항상 지나던 거리를 변함없이 가는 중이었고, 기사님은 신호를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을 했다. 모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채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나만 화가 난 거다. 그렇다면 이건 내 문제였다. 빨간불을 만나 불꽃을 일으킨 건 순전히 내 탓이었다.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실패했다.
정작 브레이크가 필요한 건 내 감정이었던 것이다.
브레이크는 엑셀보다 중요하다. 브레이크가 발에서 더 가까운데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멈추지 못하는 차는 재앙이다. 있는 게 없느니만 못하다. 세상살이 또한 다를 바 없다. '멈춤'이 없는 인생은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멈춤이 있기에 달릴 수 있고, 걸을 수 있다.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면, 행운의 바람을 만나 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장이 덜 난다.
삶의 무게 견디기 힘들어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여 그대로 두면 큰 병이 날 것만 같을 때. 하던 일 잠시 접고 가까운 숲으로 가자. 초록 숲의 시원한 바람결에 모든 근심걱정 흩어버리자. 숲속의 고요한 평화와 파릇파릇한 생명의 기운 가슴속 깊이 모시어 들이자.
- 정연복 시인, <숲으로 가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할 때 항상 주의하는 게 있다. 우리 강아지는 산책을 무지 좋아하는데 산책을 나가면 본인이 과호흡 인지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뛴다. 오늘만 살 것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산책을 자주 시켜줄 수밖에 없다.
무튼 과호흡이 오기 전 적당한 때에 강아지를 꽉 안아준다. 숨 좀 쉬어가며 뛰라고.
항상 말은 하는데 알아듣는지는 잘 모르겠다. 귀여운 것. 만일 당신이 오버페이스라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멈춰 자신을 꽈악 안아줘라. 온기가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우리, 좀 쉬어가 보자.
빨간 불꽃이 애먼 데로 향했던 그날. 아마도 그날은 버스가 아닌 나에게 브레이크가 필요한 날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