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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Nov 08. 2021

저평가된 밤의 매수 타이밍

저녁형 인간의 이유 있는 외침


나는 밤 열 시부터 눈이 반짝인다. 가끔 자정 즈음에 남자친구랑 굿나잇 통화를 할 때면 졸음이 전혀 묻지 않은 내 목소리를 남자친구는 신기해하곤 한다. '잘 생각이 없구나?' '어? 아닌데..^_^ (사실 맞음)' 아침 일찍 일어난 날은 중간에 졸음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눕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집에서 쉴 때도 누워 있기보다는 보통 앉아 있는다. 이런 것들이 불편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편하다.


올해 들어 열두 시 전에 잠든 기억이 거의 없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하면 좀 피곤하긴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도 점심쯤 노곤해지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나. 한동안(어쩌면 지금까지도)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기적처럼 빠르게 시작하는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었는데, 나는 줄기차게 역행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왜 늦게 자는 걸까.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새벽의 기운을 영원히 느껴볼 생각이 없는 걸까?

 

새벽이라는 시간이 비교적 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밤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밤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보니 굳이 새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새벽의 고요함만큼이나 밤의 까만 침묵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세상에 나 말고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것 같은 고요와 어둠은 늦은 밤 초콜릿보다 달콤한 희열을 안겨준다. 자유로움이 넘쳐흘러 어디론가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태양이 뜨는 아침을 맞이하며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아침형 인간의 장점이라면,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하루를 느지막이 끝낼 수 있다는 건 저녁형 인간만의 장점이다.



엊그제 가족들이랑 강화도에 놀러 갔다가 잠들기 전 잠시 바깥공기를 쐬러 마당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새벽 한 시의 밤하늘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게 얼마 만에 제대로 보는 별자리인지.. 제일 선명하게 보였던 오리온자리부터 아름다운 더블유 모양의 카시오페아,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그리고 가장 반짝이던 북극성까지. 그야말로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별자리를 배웠던 어린 날의 기억을 소환한 강화도의 밤은 내게 보석 같은 장면을 선물해주었다. 내가 왜 밤을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도 괜찮다. 늦잠을 잔다고 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단지 그날의 생각과 감정이 더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운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하고 잠에 드는 것뿐이다. 그러니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새벽형 혹은 아침형 인간을 치켜세우더라도 밤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좋다면, 내 몸과 마음이 밤을 원한다면 그 기분을 따르면 된다. 저녁형 인간도 충분히 행복하고 보람차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새벽의 호재로 인해 저평가된 밤을, 신나게 매수해야 할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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