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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삼팩토리 Sep 25. 2022

[인터뷰] 내가 찾는 매니저를 만났다.

우아한형제들 로보틱스 LAB 팀장 Spike

‘ㅆ ㄹ ㄱ 팀장 만난 썰, 사수가 싸이코 같아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한 번쯤은 봤을 만한 글 제목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런 글을 보고, 과거 자신의 지옥 같았던 신입 시절을 떠올리며 공감의 댓글을 적는다. 


살면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게 직장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라면 하루하루가 악몽일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일이 나에게 생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주기를 기대한다.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커리어, 명예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성장, 만족스러운 인간관계일 수 있다. 


나에게는 일할 때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유는 인맥 또는 관계 때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순전히 먹고사는 의미에서이다. 어떤 ‘사람’ 때문에 일하기 싫고, 어떤 ‘사람’ 덕분에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이 우리의 생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있다는 걸 상상해보면 아찔하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소위 ‘일 때문에 만난 사이’인데,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경우이다. 그럴 때는 마치 인생의 보너스를 받는 느낌이다. 일도 즐거워지고,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에 ‘일’과 ‘사람’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최근 만난 우아한형제들 로보틱스 LAB 팀장 Spike가 그랬다. 결국 이 대화의 끝에서 난, “아, 제가 찾는 매니저가 여기 계셨네요!”라고 외치고 말았다. 


내가 찾는 매니저를 만났다!


우아한형제들 로보틱스 LAB 팀장 Spike 이야기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일하는 나는, 여러 문화권을 경험한 사람들이 항상 반갑다. 두 세계의 차이에 관한 얘기 나누며 격한 공감을 하고, 그 사이에서 느끼는 고뇌도 대체로 비슷해서 삶의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Spike는 한국에서 전기/전자 공학을 전공하고, 한국과 미국의 다양한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우아한형제들(이하 ‘우형’)에 합류하기 전에는 미국 구글 본사에서 10여 년 동안 일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우형에서 로보틱스 LAB을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기 좋은 회사’로 유명한 우형과 구글러가 만났다? 그야말로 “이게 무슨 일이야!”를 외칠 법하다. 그가 경험한 미국과 구글, 그리고 다음 행보로 선택한 한국과 우형의 이야기는 ‘일의 미래’를 고민하는 나에게 놓쳐서는 안 될 특종이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에서 했던 많은 경험을 잘 녹여내어, 한국에서도 좋은 엔지니어링 팀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Spike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우아한형제들’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0년 넘게 구글에 있으면서 굉장히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한국 테크 씬(tech scene)이 바뀌는 것도 잘 관찰하고 있었고요. 한국에 재미있는 회사들이 많이 생기고 테크 회사들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 정도 수준이면 앞으로 한국에서 일했을 때 더 재밌는 일이 많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한국 회사들에 대한 정보를 듣고 모으면서, 제가 뭘 원하고, 여기에서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도 명확해지더라고요. 


제 강점은 우수한 엔지니어링 기술을 만들어낸 구글이라는 회사에서 오래 일했다는 점이에요. 실리콘밸리의 좋은 엔지니어링 기법도 전파하고, 특히 제가 몸으로 경험하고 보고 배운 조직문화, 일 문화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도입해서 우리나라 테크 씬 엔지니어의 기준과 수준을 높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우아한형제들은 한국에서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 우아한형제들


우형은 스타트업이었지만, 빠르게 성장했죠. 일 문화에 있어서만은 여전히 스타트업에 가까워요. 유연하고, 오픈된 문화거든요. 한편으로 회사 크기가 커지고 체계와 인프라 등이 갖춰지면서 성장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죠. 


우형 같은 단계의 회사에서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우형은 이제 스타트업이 아니지만 오래된 대기업도 아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저에게는 양쪽의 장점을 다 갖춘 환경이었고요, 그 사이의 빈 곳을 제가 잘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존에 하신 분야가 아닌 로보틱스 LAB을 이끌게 된 것도 흥미롭네요. 



저도 제가 살면서 로봇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웃음) 저는 제너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로봇은 특별한 도메인이잖아요. 근데 저는 20여 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개발 현장에서 직접 프론트엔드, 백엔드, 모바일 앱, 머신 러닝, 인프라스트럭처 등 다양한 영역을 경험했어요. 구글은 엔지니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었거든요. 스마트한 엔지니어라면 뭘 시켜도 배워서 잘한다고 생각해요. 구글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회사들에서는 제네럴리스트(generalist)를 선호해요. 


이런 경험이 가져다준 큰 장점이 있어요. 바로 어떤 분야의 엔지니어들과도 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게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꼭 필요한 능력이거든요. 로봇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머신러닝 등 여러 분야의 엔지니어링이 필요하잖아요. 이렇게 도전적인 분야를 딱 맞는 시기에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아한형제들 배달 로봇 ‘딜리’ © 우아한형제들



새로운 분야라 도전도 많을 것 같아요. 



산업 분야의 공장 자동화 로봇은 많이 발달해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서비스 로봇이나 공공장소의 자율 주행 로봇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죠. 


가장 큰 허들은 역시 기술인데요. 자율 주행 기술은 아무래도 안전과 직결된 문제를 갖고 있으니까요. 서비스 로봇 분야의 자율 주행은 지금은 몇몇 프론티어들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자율주행 차보다는 위험도가 덜하고, 조금만 똑똑하게 열심히 한다면 선두에 설 수 있을 분야예요. 


도전적인 것이 많지만, 기술적으로는 이미 거의 구현이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기대가 돼요. 지금 단계에서 누군가 효율적으로 스마트하게 밀어붙여서 프로덕트를 만들어내고 증명해낸다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봐요. 


관건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죠.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자본과 인적 자원이 투입되었어요. 그러니 곧 다음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일어날 것이라고 봐요. 정말 익사이팅(exciting)하죠. 



설레는 말, Next Innovation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아직은 어두운 곳에 붉을 밝혀주는 것, Innovation




지금 로보틱스 LAB에서 주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희 팀에서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로봇(last mile delivery robot)에 주력하고 있어요. 마치 아이스박스에 바퀴를 붙인 것 같은 작은 로봇인데, 공공 차로가 아닌 인도나 횡단보도 등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다니는 저속 자율 주행 로봇이에요. 우형의 주요 비즈니스 요소인 ‘배달’을 도울 수 있는 용도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제품화하는 것이 목적이죠. 


저희 팀의 목표는 미래 물류를 완전히 혁신하는 거예요. 혁신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최단 시간에 최저 비용으로 A에서 B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의미해요. 배달, 이커머스 등 모든 물류에서는 그게 핵심이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비효율적이에요. 자율주행 로봇을 배달 서비스에 활용하게 되면, 라이더들도 정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배달을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우형이 음식 주문 중개 비즈니스를 정말 잘하는 회사였다면, 이제 전체 인프라를 고민할 수 있는 수준의 단계가 되었어요. 음식 배달과 퀵 커머스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노하우와 성공 경험을 가진 회사가 되었으니까요. 


‘딜리’는 지금 곳곳을 주행 중이다! © 우아한형제들



‘로보틱스 LAB의 탄생’이 결국 우아한형제들의 현 단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상징이라는 드네요. 우형의 비전과 로보틱스 LAB의 비전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10여 년 만에 이렇게 역량 있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우형이 아니면, 이 혁신을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우형이야말로 업계 전체를 이끌어 가는 ‘혁신’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형 안에서도 로보틱스 LAB이 ‘혁신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이런 비전을 갖고 중단기 목표를 거꾸로 설정해보았어요. 약 8년 뒤, 그리고 4년 뒤에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 결론이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로봇이었어요. 기술과 규제의 상황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모두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로우 행잉 프루츠 (Low Hanging Fruits)’ 죠. 그래서 단기적으로 비즈니스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이를 선정한 거죠. 실제로 음식 배달에 있어서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집 문 앞까지 걸리는 시간’이 가장 비효율적인 영역이에요. 당장 해결이 필요한 지점이죠.  


매니저의 ‘일’



로보틱스 LAB의 비전에서 중단기 목표까지 설정한 후 구체적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매니저로서의 일도 궁금해요. 아무래도 ex-구글러에게는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고요. 



제가 로보틱스 LAB에 오자마자 한 일이 이 비전과 목표를 매우 구체적으로 만드는 일이었어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이 팀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고요. 이미 우형에서 로봇 개발을 시작한 이후였지만, 의외로 '왜 로봇을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부족했어요. 팀원들 모두가 비전과 구체적인 목표를 공유해야 동기 부여가 되고 일이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먼저 우리가 왜 로봇을 개발해야 하는지 고민해서 비전을 만들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 아이템들을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비전과 목표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력(execution)이거든요. 이를 위해 OKR*을 도입하고, 실행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어요. 


*OKR: 「Objectives and Key Results」의 약자. 「목표와 성과 지표」라는 뜻으로 조직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전 직원이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실제로 어디까지 달성되었는지 성과를 수치화하는 것이 목표 달성을 위한 프레임 워크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20여 년을 일하셨는데, 특별히 매니저로서 트레이닝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요. 



매니지먼트 기술을 따로 훈련받거나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구글에서 여러 부서의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매니저를 모셨기 때문에 그들의 각기 다른 스타일에서 보고 배운 게 많아요. 그들과 일하면서 저만의 뷰 포인트 (view point)를 형성할 수 있었죠.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닌 경력이 지금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구글은 매니지먼트와 팀 퍼포먼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어요. 이 연구에서도 ‘매니저의 역할’을 강조해요. 매니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여러 도구들도 있고요. 구글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우형에도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더 배워서 잘 적용하는 단계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매니저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남들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의 표현에 의하면 ‘잘 듣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를 위해서 팀원과 1 대 1 미팅을 정기적으로 인텐시브 하게 하는 편이에요.  



1 대 1 미팅에서 매니저로서 대화를 어떻게 끌어나가는 편이세요?



팀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해요. 매니저의 역할은 결국 ‘팀원이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팀원의 커리어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답을 정해 놓고 1대 1 미팅에서 대화의 결론을 그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이 매니저가 하는 가장 흔한 실수라고 생각해요. 그건 소통이 아니라 지시일 뿐이잖아요. 팀원의 발전을 돕는 일도 아니고요. 누구나 스스로 성장한다고 느껴야 ‘회사 다닐 맛’이 난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귀한데, 이들이 회사에 다니기 싫어지는 순간을 만드는 게 매니저로서는 최악이죠. 그래서 팀원들에게도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이 부분은 우형이 전반적으로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죠. 


매니저는 조직 전체의 목표와 팀원의 목표가 일치하고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하는 역할이에요. 자기 팀원들이 맞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는지 함께 확인하면서 구성원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해결할 수 있도록 매니저가 조언해주고 도와줘야 해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냥 일 시키는 사람’이지 매니저가 아니죠. 



엔지니어 출신의 매니저이기 때문에 강점도 있을 것 같아요. 



팀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그 사람의 업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주 불러내는 것도 주의해야 해요. 엔지니어들은 일하는 중에 일이 끊어지면 원래의 워크플로우로 다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리거든요. 제가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에 엔지니어 업무의 특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편이죠. 


그래서 팀원들과 1 대 1 미팅을 잡을 때에도 그런 측면을 많이 고려하고 있어요. 근데 우형은 유연근무제라서 10시에서 16시 사이에만 미팅 스케줄을 잡을 수 있어요. 사람마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니까 일정 잡기도 너무 힘들어요. (웃음)



한국과 미국, 그 사이에서 



미국의 테크 씬을 리드하는 회사에서 일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셨는데, 미국과 한국의 업무 방식과 일 문화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모든 것을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겠죠. 한국에서 제가 우형 이전에 경험한 회사는 너무 오래전 일이고, 미국에서는 구글밖에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요. 그 점을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문화적 차이가 커요. 미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는 문화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나댄다, 튄다.’라고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죠. 반대로 한국처럼 대부분 듣고만 있다면, 미국에서는 오히려 ‘관심이 없나, 이해를 못 하나.’라고 여겨질 수 있어요. 문화적인 차이죠.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간혹 미국 사람들과 일할 때, 뻔한 얘기를 쓸데없이 떠드는 경우도 많거든요. 시간 낭비일 때도 있죠. 한국에서는 충분한 의견 교환이 없어서 아쉬운 경우가 있고요. 


조직 구조와 문화에서도 다른 점이 많아요. 한국 회사에는 보통 사원, 대리, 차장, 부장 등의 직급이 있고, 조직 구조에서 상하관계임을 확실히 알 수 있죠. 반면, 구글의 조직 구조는 직급에 기반한 상하관계보다. ‘누가 누구에게 보고(report)해야 하는가. 나의 매니저가 누구인가’ 하는 매니저 리포트 라인이 가장 중요해요.

 

이런 조직 구조의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팀장, 파트장, 차장, 부장 등의 상하 직급이 있는 조직에서처럼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해줘야 하고,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거든요. 자신이 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매니저가 누구인지, 그 점만 확실하게 하면 돼요. 


일의 성격이 바뀌면, 누가 어떤 매니저에게 리포트를 하는지만 조금씩 바뀌고요.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고, 내부 피봇팅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유연한 조직 구조의 장점이 무엇일까요?



업무 외적으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은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나보다 ‘높다, 낮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누군가 나와 나의 업무를 좌지우지한다는 두려움도 없고요. 유연한 조직 구조에서 매니저는 매니징하는 역할이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코드를 짜는 역할이에요. 엔지니어와 그 엔지니어의 매니저는 대등한 관계에 있죠. 그러니 ‘일 중심’으로 사고할 수 있어요. 이는 업무 방식과 효율에 큰 영향을 주죠.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는 고성과 팀의 비결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해요. 그 결과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이 보장되는 팀이 일을 잘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이에 대한 저의 해석은 ‘누구나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조직이 고성과 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요. 


즉, 할 말을 다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조직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개인과 조직 모두 바보짓을 덜 할 수 있어요. 누군가의 말에 복종해서,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우아한형제들에서 경험한 일 문화, 그리고 로보틱스 LAB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 이야기를 담은 책 '이게 무슨 일이야!' ©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를 어떻게 경험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처음 우형에 왔을 때 구글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놀랐어요. 그래서 ‘구글 출신 경영진이 있나?’ 생각할 정도였어요. 우형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평등하고, 오픈 마인드를 가진 조직이거든요.


실제로 우형 대표 범준 님 (김범준 CEO)이 몇 주에 한 번씩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도 갖고, 직원들도 익명 게시판에 자유롭게 질의를 해요. 여기에 범준 님이 직접 대답하시죠. C 레벨 임원들과 격의 없이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워요. 오히려 구글보다 더 잘하는 점도 많아요. 특히 평등한 문화에 있어서는 더욱 그래요. 



우아한형제들의 평가 시스템은 어떤가요. 


실리콘밸리와 매우 유사하다고 느꼈어요. 내부적 역량 평가 기준이 있고, 평가의 목적은 결과에 따른 차별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직원을 ‘성장’ 시켜주기 위한 목적이에요. 즉, 커리어 개발을 위한 가이드를 제시해주죠. 엔지니어나 직원의 역량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이 사람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할지 고민하죠. 



로보틱스 LAB만의 특별한 일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도 있나요?


로보틱스 LAB은 효율적인 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들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심리적 안전이 팀의 업무 효율을 높인다.’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깊이 있게 고민해요. 


물론 ‘구글 따라 하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우형이고, 우형에서도 로보틱스 LAB이에요. 구성원이 다르고, 우리가 하는 사업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 맞는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채용 방식도 팀마다 다르다고 들었는데, 로보틱스 LAB만의 독특한 채용 방식이 있나요?


우형의 모든 팀은 채용을 독립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특히 저희 팀이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우형은 지금까지 비즈니스를 키우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왔어요. 그래서 채용도 그러한 속도에 맞추어야 했고요. 지금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고민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것을 하나씩 적용해 보고 있어요. 


로보틱스 LAB에서 하는 것은 새로운 분야죠. 그래서 이 분야의 개발을 경험해 본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니 경력자만 뽑는다고 하면, 경험은 없지만 똑똑한 분들을 놓치게 돼요. 그래서 회사가 원하는 분야의 개발을 반드시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기본기가 튼튼한 사람,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채용하려고 해요.


그리고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팀 플레이 능력이죠. 


사람을 채용하는 기준과 전략을 바꾸었기 때문에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어요. 먼저 기술 면접을 세 번의 1대 1 세션으로 진행하는데, 세션마다 면접관이 달라지는 형태예요. 세션의 대부분은 라이브 코딩 테스트이고, 면접관은 이 사람이 문제 해결하는 과정을 보게 돼요. 


인터뷰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이미 검증을 마친 정해진 질문 세트가 있고, 체계적인 프로세스에 따라 그 질문을 진행하는 방식의 면접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러한 방식을 시도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중점을 두는 것은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사람을 뽑는 것이에요. 개인적인 취향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팀의 다양성이 높을수록 생산성도 높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결론이거든요. 특히 조직이 커질수록 다양성이 중요하고요. 조직 문화에 다른 장점을 더해줄 수 있는 사람, 즉, culture fit을 넘어서 culture add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뽑고 싶어요. 



채용하는 면접관도 준비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실제로 저희 팀에서는 면접관 트레이닝을 해요. 다른 사람의 인터뷰 과정을 3번 정도 섀도잉하고, 본인이 인터뷰를 맡게 되면, 이미 경험 있는 능숙한 면접관이 2번 정도 거꾸로 섀도잉하며 피드백을 주죠. 


물론 저희 시스템의 단점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에요. 면접관과 지원자 모두 시간을 너무 많이 써야 하죠. 본인이 면접관이라고 해도 평가를 위해서 출제할 문제를 모두 파악하고 공부하고 들어가야 해요. 라이브 코딩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면접관도 그 시간에 함께 머리를 쓰고 고민해야 하니까요. 끝나면 피드백을 작성하게 돼요.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피드백을 작성하는 중에는 3명의 면접관이 서로 의논할 수도 없도록 했어요. 최종적으로 채용 위원회에서 이 피드백들을  같이 리뷰하면서 결론을 내려요. 

사람에게 그 정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씩 실험하면서 알아가는 중이에요.  


쉽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채용을 해 나가고 있어요. 





한창 클 나이도 아닌데 철없이 계속 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I am still hungry’  (이 말 아는 사람들 최소 동년배)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님이 확실하다. 


우리 모두 성장하기를 원한다. 여전히 자라나는 새싹인 우리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일이 그저 밥벌이로만 전락할 때, 난 서글퍼진다. 먹고살기 위한 밥벌이는 숭고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일이 그저 ‘매달 충전되는 월급 뽕’에 그친다면 허무하다. 그러기에는 우리가 평생 ‘일’에 쏟아붓는 에너지와 시간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일하며 한국과의 차이를 매일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두 사회의 ‘일’에 대한 인식  차이를 발견하는 일은 흥미롭다. 그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나은 곳은 없다. 다만, 어느 쪽이든 나를 성장시켜주는 일터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Spike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도 우리의 일터가 ‘나와 잘 맞는 곳(fit), 그 이상 (add)이 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Spike와 우형의 로보틱스 LAB에서 고민하는 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누구도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해야 하는데.”라고 잠시 말을 멈추며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만남 전 그의 이력을 듣고, 왠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미국식’ 말하기를 할 것이라고 단단히 정신무장(!)을 하고 간 나의 편협함이 무색했다. 



“어느 말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누구도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거,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게 큰 화두거든요.

가감 없이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것과 사람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며 말한다는 것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조금 상처 주면서 말해야 솔직히 피드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여전히 기분 나쁘지 않게 상대를 성장시키며 피드백을 줄 방법이 있다고 믿어요. 

그런데 아직 그 방법을 뾰족하게 찾지 못했어요. 아직도 탐구하고, 수련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요.”


-Spike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예의 없는 사람이다. 나를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하다 만난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일을 잘못해서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건지,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인 건지,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일할까. 왜 일을 잘하고 싶어 할까. 우형과 로보틱스 LAB의 Spike가 고민하는 것, 그곳에서 시도하는 것들은 한국에서, 미국에서,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다른 차원의 일 문화를 만들어 줄 것만 같은 기대가 든다. 그래서 마지막에 고백하고 말았다. Spike님, 저 매니징 좀 해주세요. 




이은서

eunseo.yi@123factory.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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