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자가 부장님 옆에서 작아지는 나

조금씩 밀려나는 40대의 여자의 담담한 회고

by sso

이제야 고작 인생의 반을 살았다.사회에 들어와 보니
40대 여자는 정치를 못하면 껴주지도 않았다.
고과평가에선 뒤로 밀려나고,어느새 ‘고인물’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남은 이유는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는 가장도 아니었고부양해야 할 식구도 없었다.

그래서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성과를 내도고과평가의 끝에서는

늘 한 발 뒤로 밀렸다.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책임이 덜한 사람처럼,

덜 절실한 사람처럼,

덜 필요한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분류됐다.

능력보다상황이 먼저 해석되는 자리에서

커리어는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멈추고, 고이기로 한 건
사실 내 선택이었다.





회사 건물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나는 딱 그 평수만 보며 살았다.



세상은 보지 못한 채.

내가 성장하던 시절,
TV 속에는 늘 예쁜 커리어우먼 언니들이 있었다.
자기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투명한 화장에 단정히 세팅된 머리,
사원증을 카리스마 있게 걸고
‘여유와 우아함’을 가진 사람들.미디어가 만들어낸
일하는 여자의 이미지였다.현실의 회사는 달랐다




영업, 마케팅, 기획, 전략, 실적 보고서.
늘 퀭한 피부,하이힐 대신 슬리퍼,상사의 눈치를 읽느라사라지지 않는 불안과 긴장.


가장 힘들었던 건 업무의 강도가 아니라
점점 위축되는 나의 마음이었다.

30대까지만 해도나도 예쁘고 활달한
“대리님”, “과장님”이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밀려나는 건
남자 부장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위로 갈수록 자리는 제한적이었고,줄을 잘 선 남자들 사이에서여자들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언젠간 경력단절이 될 사람’으로미리 분류된 여자들은가장 먼저 멀어졌다.0순위였다.
애초에 의자 위에 올려지지 않았다.그리고 간신히 올라간 여자들은항상 설명이 필요했다.




‘드세다’거나
‘기세가 세다’거나
둘 중 하나였다.나는 그 틈에서 조용히 작아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를 멈추게 한 건회사도, 구조도, 나이도 아니었다.

세상을 보지 않기로 한내 선택이었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앉아 있던 의자의 크기만내 인생의 크기라 착각했다.


이제는 안다.
40대는 끝이 아니라
정리된 데이터와 경험이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걸.

나는 더 이상예쁘게 보이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지 않다.
대신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여자,
내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은다시 시작하려는
40대 여자의 커리어 기록이다.

고여 있던 자리에서 내려와세상을 다시 보기로 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이제야 고작,
인생의 반을 살았다.그래서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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