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100만원 삶에서 10만원삶으로..

일주일에 100만 원 벌던 내가, 지금은 10만 원을 선택한 이유

by sso

일주일에 100만 원을 받던 삶에서 일주일에 10만 원을 받는 삶으로 바뀌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호주에 돌아온 뒤, 나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졌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덜 무겁고,

조금은 숨을 쉬게 해주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좋아하고, 호주에서 조금은 트인 귀를 가지고 있고, 초 등학생 정도는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아도, 지금은 그런 선택이 필요했다.




하루 3시간짜리 파트타임. 우리나라 시급은 여전히 아이러니하다.
커피 한 잔 값에 3~4 천 원을 더 얹은 정도의 금액. 숫자로만 보면 작고 초라한 선택이다.




늘 채용 사이트만 들여다보던 내가 알바 사이트를 뒤져본 건 대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채용’이라는 이름의 갑과 을 관계 앞에서 이력서는 최대한 짧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넣었다.

아르바이트의 이력서는 최대한 화려하지 않아야 한다,

관리자가 아니라 사원의 입장으로 다시 내려놓고

써야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넣었는데, 운동을 끝내고, 밤 09:00에 연락이 왔다. 딱

‘강사’라는 타이틀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교 후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출근을 한다는 게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풀어주었다. 아이들의 하루가 끝나는 오후 3시,

초등학교 강사의 하루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회사라는 이름 아래 짓눌려 있던
나의 10kg짜리 아령을
잠시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 회복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호주에 다녀온 후의 공허함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버텨내기엔
몸에 밴 ‘일하는 습성’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일.
아주 작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속도의 일.

그렇게
나의
‘ooo 어학원, 파트타임 선생님’

생활이 시작되었다.



파트타임은 나만알고, 아이들에게는

정규/ 비정규/ 파트 /풀 상관없이

그냥 '선생님'인것이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제가 이거이거 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아이들은
자신을 뽐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작은 성취도 온몸으로 자랑한다.

열정이 가득 찬 맑은 눈.
그 눈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총기 없는 눈으로 회사를 나왔다.
버텨내느라 흐려진 눈,
책임과 중압감에 눌려 반짝임을 잃은 눈.






그런데 아이들의 눈은
아무 이유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루 3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퇴근할 즈음이면 내 책상 위에는
아폴로 3개가 놓여 있고,

젤리 2개가 조심스럽게 올려져 있다.





“선생님, 이거 드세요.”

너무나 귀여운 선물.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중압감과 책임감은
나는 언제쯤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낮에 다른 선생님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일하는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공간에 몸을 두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공기가 조금은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의 파트타임을 마치고 나면
나는 또 다른 역할로 돌아간다.




강사가 아니라, 학생으로.

YBM 수강생.

호주에서 트인 귀를
이렇게 다시 닫아버리기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40대의 진로 탐색은
20대의 취준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고민한다.

다만 한 가지가 다르다면
이제는 삶을 조금 더 살아보았기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선택,
지금의 나에게 무리가 없는 속도를
조심스럽게 고른다.








아폴로와 젤리 사이에서
아주 작은 회복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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